고대사 일반

< 내가 보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원인 >

엑칼쌤 2018. 8. 13. 17:46

내가 보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원인 

 

 

 

백제와 신라의 관산성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고...

 

혜왕과 법왕이 왕위에 오르지만 3년만에 사망하고...

 

를 이을 왕이 없자 수소문 끝에 찾아낸 서동(마동). 

 

'서동요'로 알려진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지금의 익산이 고향인 그는 자신의 고향에 동양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를 창건하는 등 수도

천도를 시도하지만 기존 집권 세력의 반대로 무산되자 익산을 신라를 공격하는 전초 기지로 활용하였다.

 

그 뒤를 이은 의자왕.

 

의롭고 자비로운 왕. 그는 어머니가 상대국인 신라의 공주 출신임에 초반 신라 공격을 주저하였으나, 곧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신라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의 성을 차지하였다. 재위 15년까지는 꾸준히 왕권 강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다가 '은고'라는 여자의 전횡에 빠져들어 국정을 소홀히하게 되어 기존 세력과 신진 세력간 권력 투쟁이 발생하여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한때 신라와 비등한 군사력을 보유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백제는 계백장군이 5천의 결사대로 5만의 신라군을 공격하러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의자왕 후반기 문란했던 정치사를 부각하기 위해 결사대의 숫자를 고의로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계백 장군은 백제의 국운을 예상한 듯 집에 들러 처자식을 다 죽이고 전투에 임하였다. 초기의 전투는 백제가 승리하였으나 나이 어린 신라 화랑들의 분투로 결국 신라가 승리하게 되어 백제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고구려는 당 태종의 지시에 따를 것을 주장한 영류왕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이

665년 죽고, 요동사령관으로 임명된 큰 아들 연남생이 동생들과의 권력 투쟁을 피해 당으로 투항하자 요동 방어선이 붕괴되고, 연개소문의 동생이자 남부군 사령관인 연정토는 신라로 투항한다. 결국 지배 세력간에 권력 분열로 668년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누수, 분열, 지배층의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