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고려시대

< 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

엑칼쌤 2020. 10. 13. 17:34

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김윤후는 1232년(고려 고종 19) 현 용인 백현원(白峴院)의 승려로 있을 때, 몽골대군이 침입해 오자 지금의 처인성(處仁城)으로 피란해 성민들을 지휘했다. 때마침 몽골군이 처인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자 처인성 피란민들을 지휘해 몽골군과 싸웠다. 특히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여 몽골군을 퇴각시켰다.

 

고종이 살리타이를 사살하고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에게 상장군의 직위를 내리자 김윤후는 공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며 "저는 전쟁을 당해서도 무기를 잡고 일어서지 못했던 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잘 것 없는 공으로 후한 상을 받겠습니까?"하며 사양했다는 일화가 <고려사>에 나온다.

 

공을 양보한 승려 김윤후에게 고종이 관직을 낮춰 섭랑장으로 임명하자 그때서야 관직을 받아들이고, 이후 군인으로 활동하며 대몽전쟁 기간에 큰 공을 세웠다.

 

1253년(고종 40) 10월 승장 김윤후는 충주산성 방호별감 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이때 야굴이 이끈 몽골의 대군이 또다시 쳐들어왔다. 그는 70여 일 동안 몽골대군을 맞아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해 적을 물리쳤다.

 

식량이 떨어져 위태롭게 되자 김윤후는 "만일 힘을 다하여 싸우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관작을 제수할 것이니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하고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전해진다. 이어 관노의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눠 주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워 몽골군을 물리쳤다.

 

고려 조정은 그 공을 높이 사 김윤후를 감문위상장군에 임명했고, 그밖에 전공을 세운 관노, 백정 등에게 모두 관작을 제수했다. 충주산성 전투의 공로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됐다.

 

몽골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윤후 승장에 대해서는 <고려사> 열전, <고종세가> <원종세가> 등에 짧은 내용만 전해 안타깝게도 자세한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1232년 승려 김윤후는 몽골의 2차 침입 당시 처인부곡민과 인근 승려들을 지휘해 원수 살리타이를 사살하고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됐으며 부곡민들도 평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