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박스 속 눈물의 편지들 >
베이비박스 속 눈물의 편지들
“죄인인 엄마지만, 널 힘들게 지켰어”
아기를 두고 가며 생모(생부)들이 남기는 것이 있다. 편지다. 하다못해 태어난 시각과 예방접종 여부라도 쪽지에 적어둔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인 베이비박스에는 그들의 편지 1,800여 통이 고스란히 보관돼있다.
친모들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편지에서 일컫는다. 그래서 편지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미안하다”는 문구다. 임신에 이르게 된 책임, 아이를 낳고도 기르지 않고 버렸다는 죄의식이 평생 그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외도와 같은 혼외 관계로 출산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생부나 생모는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 “화장실에서 세상에 나온 불쌍한 내 아기”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엄마의 육필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직 세상은 아무도 이 아이를 모릅니다.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했어요. △△△△년 △△월 △△일 △△시쯤 태어난 제 천사입니다. 못난 엄마 때문에 조그만 화장실에서 세상을 봐야만 했던 아이입니다. 젖을 물리는 법도 몰라 초유도 먹이지 못했어요.”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이’라고 쓸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칸방 화장실에서 혼자 생살을 찢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도 그에겐 죄책감뿐이다.
“제가 일을 가면 혼자 굶으면서 울고만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어 누구보다 예쁘고 소중한 제 자식을 보냅니다. 아이가 열세 시간이나 배를 곯은 적이 있어 건강이 너무나 걱정돼요. 태몽은 □□였어요. 부디 사랑 많이 받는 아이로 키워주세요. 아이가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 역시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였던 엄마들. 그들은 인터넷을 뒤지고, 며칠을 고민하다 베이비박스로 왔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어요.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너무 걱정이 되어 울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우는 건 아기에게 못 할 짓이란 생각에 열 달을 품고 살았어요.”
◇ 청소년모의 눈물 “내 부모가 없어 입양도 못 보내요”
미성년의 엄마는 아이를 입양조차 보내지 못하는 게 애달파 또 운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도 없어서 부모의 입양 동의도 받지 못해요.” 비혼 상태에서 청소년모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부모 동의까지 받아야 자녀를 입양 보낼 수 있다. 친모가 성인이더라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면 입양특례법상 입양은 불가능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 137명 중 65%가 그래서 보육원 등 아동복지시설로 가야 했다.
연습장이나 메모지, 심지어 광고지나 참고서를 찢어 여백에 비뚤비뚤 쓴 글씨들에선 갈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월 □시 (태어난) ○○입니다. 미혼모에다 쫓기는 처지라 이렇게 부탁드려요… 염치없이 의탁합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맡깁니다. 열심히 일해서 꼭 데리러 올게요.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
“1년 안에 자립해서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할 거예요. 꼭 1년 후에 찾아올게요. 정말 전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반드시 데려온다는 생각만 갖고 살게요. 부디 그동안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 성폭력 당해 강제로 엄마가 된 사람들
아이의 생부에게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베이비박스를 찾지는 않았을 테다.
“임신 6개월쯤 되니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폭력도 행사했어요. 자살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러지 못했어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아이에게 미안해서요. 제겐 희망이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 아빠와 헤어졌습니다. 혼자서라도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친정이란 것이 없는 제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요. 극도의 우울함과 불안함 속에서 50일을 버텼어요.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게 더 못 할 짓인 것 같아요.”
“아이 아빠가 무책임하게도 저를 떠나버렸어요. 도저히 혼자서는 아이를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이별하고 나서 임신인 걸 알았어요. 남편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남편이 정말로 원망스러워요.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사실혼 관계로 1년 넘게 산 아이 아빠에게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제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그런데도 사과도 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빚까지 짊어진 채 혼자서 월세방에서 아이를 키울 일이 너무나 막막합니다.”
◇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너를 낳았어”
“아가야, 너를 낳은 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전부라서 미안하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함께 하고 배 아파서 낳은 우리 아기… 사랑한다.”
“이런 엄마에게도 웃어주어 고마워. 나와 달리 너는 배 부르고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네 살 냄새를 엄마는 잊지 못할 거야. 사랑해, 사랑해.”
“너를 가져 배가 불렀을 때 엄마는 일도 그만두고 하루 한 끼로 버텼어. 우리 ○○를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엄마가 많은 고생을 한 거, ○○는 알 거라고 믿어. 엄마 몸이 좋지 않아 이 곳에 데려왔어. 절대 너를 버린 게 아니란 것 기억해줘. 태어난 걸 축하해. 사랑해, 내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