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의 칼 '칠지도' 日에서 공개 >
백제의 칼 '칠지도' 日에서 공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몸체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6개의 가지는 위용을 드러냈다.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밝힐 열쇠, 칠지도(七支刀)다.
1천600년 전 백제 최고 장인이 만든 칠지도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초(超) 국보 - 영원의 아름다움' 특별전 언론 공개회에서 취재진이 칠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나라국립박물관 측은 "백제 왕실이 왜(일본)왕을 위해 제작한 것"이라며 "1천600년의 시대를 넘어 한일 교류 실태를 알리는 경이롭게 소중한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칠지도는 '7개의 가지가 달린 칼'이라는 이름의 유물이다.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개관 130주년 기념 특별전 '초(超) 국보 - 영원의 아름다움' 언론 공개회에서 소개된
칠지도 모습.
나라현 덴리(天理)시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칼은 1874년경 그 존재가 학계에 알려졌고, 1953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오래전부터 신성한 신물(神物)로 여겨온 유물은 발견 당시 녹이 심하게 슬어 있었으나, 녹을 제거하던 중 칼 몸체의 중앙 부분에 금빛으로 새긴 글자가 드러나면서 주목받았다.
총 74.9㎝ 길이의 칼 앞면과 뒷면에 새긴 글자는 60여 자, 일부는 읽어내기 힘든 상태다.
예컨대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태○사년 ○월 십육일 병오'(泰○四年○月十六日丙午), 뒷면의 '백제왕세'(百濟王世) 다음 글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 고대 사료 데이터베이스(DB)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면) 태화 4년 ○월 16일 병오 한낮에, 백번이나 제련한 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온갖 병해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 공손한 후왕에게 주기 알맞다. ○○○○가 만들었다.'
'(후면) 선세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 백제왕이 세세토록 특별히(각별히) 성음을 내었기에 왜왕을 위하여 훌륭하게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박물관 측은 전시 안내 전단 등에서 칠지도를 주요 유물 중 하나로 소개했고 "국제 교류의 실태를 전하는 매우 중요한 칼로 그야말로 초국보"라며 의미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