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 時代의 흐름을 읽은 日,조선에 치욕을 주다 >

엑칼쌤 2010. 6. 17. 09:22

時代의 흐름을 읽은 日,조선에 치욕을 주다

 

 

죽어야 사는 나라 조선과 일본(이광훈/ 따뜻한손)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국의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해왔던 조선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일본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19세기 말 똑같이 근대화라는 대변혁의 파도 앞에서 조선과 일본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고 그로 인해 양국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기자 출신으로 개인 사업을 하면서 뒤늦게 동아시아 근대사 공부에 빠져든 이광훈씨가 저술한 '죽어야 사는 나라 조선과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비교 분석하고 특히 일본의 근대화와 메이지유신을 이끈 주역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시대의 흐름 앞에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1853년 6월 3일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에도 앞바다에 미국의 거대한 군함 4척이 나타났다. 이 군함들은 온통 까만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구로후네(黑船·흑선)'라고 불렸다. 당시 일본의 전선보다 20배 이상이나 큰 구로후네를 본 순간 싸워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도쿠가와 막부는 그 다음해 미국과 수교를 하고 계속해 영국, 러시아 등과 수교를 맺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끝까지 개국을 거부하다가 끝내 힘에 밀려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1882년 미국, 1883년 영국 등과 조약을 체결했다. 조선과 일본의 개국은 이처럼 20여년의 차이가 있었고 이 기간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조선은 이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다.

1867년 일본은 260여년을 이어오던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왕정복고(大政奉還)가 이루어졌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메이지 정부는 부국강병의 기치 하에 근대적 통일국가를 이루게 된다. 일본의 근대화와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수많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개인 학숙을 열어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해낸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쇼인은 일왕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는 일군만민(一君萬民) 사상을 제자들에게 주입시켜 당시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사무라이의 나라'를 '국민의 나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쇼인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였고 이 시골 학숙에서 훗날 수많은 대신과 장군이 나왔다. 조선 강점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일본제국 육군의 태두 야마가타 아리모토 역시 쇼인의 제자들이었다. 천출이었던 이들 두 사람이 훗날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은 오로지 쇼인의 파격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쇼인은 제자들에게 '국력을 배양해서 취하기 쉬운 조선, 만주, 지나를 복종시키고 열강과의 교역에서 잃은 국부와 토지는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는 사상을 제자들에게 심어준 정한론(征韓論)의 뿌리였다. 그에게 있어서 조선을 취하는 것은 일본이 '국체의 완성'을 위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대업이었다. 쇼인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들은 일본제국과 군국주의의 기틀을 닦았고 한일합병을 진두지휘한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 고로 등이 조선강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했다. 결국 서른살에 요절한 요시다 쇼인이 남긴 그림자가 조선을 삼킨 것이다. 저자는 이 안타깝고도 치욕스러운 역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