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 1910 208

< 김포 덕포진,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 그리고 광성보 >

김포 덕포진,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 그리고 광성보 양이(洋夷)라 했으니, 오랑캐 취급한 셈이다. 병인양요를 당해서도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는 판국이니, 조선 지배층 빼고 누군들 오랑캐 아니겠는가? 문호를 여느냐 마느냐를 떠나 세계사 흐름에 눈과 귀마저 닫아 버렸다는 게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영국은 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하며 거대한 중국에 대해선 간접 지배정책을 펼친다. 부담스러운 존재기 때문이다. 중국의 속국이라 여긴 조선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1853년 개항한 일본을 큰 시장으로 취급한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19세기 중반, 중국이 열강들 각축장으로 돌변한다. 내부는 태평천국의 난이요, 열강과는 아편전쟁이다. 두 차례 아편전쟁의 결과 중국 위상이 급전직하한다. 이리떼처럼 달..

개항기 - 1910 2025.07.02

< 동영상-강화도 전등사, 정족산성 >

동영상-강화도 전등사, 정족산성 https://youtu.be/aVhJJx5l5s8?si=z3dJ6ZTBWN93D2yE 동문을 들어가니 프랑스 군과 치열한 혈전 끝에 승리를 거뒀던 양현수 장군 승전비가 있어, 이곳이 병인양요의 격전지임을 알 수 있었다. 삼랑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고려·조선 시대에 개성과 한양의 외곽 방어를 위한 중요한 장소였다. 기울어져가는 고려 조정이 가궐(임시궁궐)을 지을 만큼 예로부터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절 가장 뒷쪽엔 1998년에 복원했다는 ‘정족산 사고’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장사각’과 왕실족보를 보관했던 ‘선원보각’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을 굳게 잠긴 문틈 넘어 확인하며 어렴풋이 역사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전주 사..

개항기 - 1910 2024.08.14

< 동학농민혁명 김개남 >

동학농민혁명 김개남 동학혁명의 두 주역은 단연코 전봉준과 김개남이다. 이는 전주화약 후 전라도를 좌도·우도로 나누어 관리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둘의 정치적 지향과 혁명전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을 전개해 나가는 전술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는 전주성 점령 직후 드러난다. 홍계훈과 싸우기보다 서울 진격을 김개남은 주장한다. 또한 벼슬아치로 대표되는 지배집단을 철저히 적(賊 혹은 敵)으로 간주한다. 전주화약에서 전라감사로 부임한 김학진과의 협상 자체를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전라도 거의 모든 지역에 집강소가 꾸려지고, 김개남은 임실을 거쳐 남원으로 간다. 하지만 전라 53주 중 나주, 남원, 운봉에는 집강소 설치가 어려웠다. 수령이나 유생들이 조직한 민보군(民保軍)의 세..

개항기 - 1910 2024.01.01

< 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에 준 선물 >

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에 준 선물 1896년 대한제국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 2세 대관식에 전달한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백동향로’, ‘흑칠나전이층농’ 등 외교선물이 처음 공개된다.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중 취태백도 크렘린박물관이 이번 전시(전시명 :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에 출품한 유물들은 아관파천(1896.2~1897.2)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2세 대관식(1896.5.26)을 맞아 민영환(1861~1905)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외교선물’ 가운데 일부다. 고종이 전달한 선물들은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그 목록의 일부가 언급된 바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

개항기 - 1910 2023.02.08

< 아관파천의 길 >

아관파천의 길 러시아 공사관을 ‘아관(아라사 공사관)’俄館이라고 불렀다.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하던 일’을 ‘파천’播遷이라고 하였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머물던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한 것을 가리켜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중요한 점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정권의 향배가 바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을미사변 이후 들어선 김홍집 내각은 바로 당일 붕괴하였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한 이후 내각 총리대신 김홍집을 면직하고, 그 자리에 김병시 등 친러 세력을 임명하였다. 김홍집은 경복궁에서 체포되어 호송 중 광화문에서 피살되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하기 이전까지 정국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었다. 고종은 경복궁에 사실상 ..

개항기 - 1910 2022.12.20

< 강화군 초지진 초지돈대 >

강화군 초지진 초지돈대 1871년에 강화도에서 미국과 조선이 벌인 전쟁은 현실 상황이었다. 강화도는 포연이 자옥한 전장이 되었다. 서해에서 조선의 심장인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강화도는 그야말로 '목구멍'이었다. 강화도가 점령당하면 조선은 심각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적을 막았다. 신미년에 미국과 벌인 전쟁이라고 해서 '신미양요'라고 부르는 그 전투는 강화해협의 아래쪽인 초지진과 덕진진 그리고 광성보에서 벌어졌다. 강화의 동쪽 바다인 '강화해협'은 '염하'라고도 불리워지는데 길이가 불과 20여km밖에 되지 않는다. 건너편인 김포와의 거리도 1km도 채 되지 않으니 바다라고 하기 보다는 강에 가깝다. 이 짧고 좁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진지들이 구축되었으니, 초지진도 ..

개항기 - 1910 2022.10.02

< 청일전쟁~한일합방 >

청일전쟁~한일합방 1894년 7월 25일.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청나라와 경쟁하던 일본이 아산 앞바다 풍도(현 안산 풍도동 인근)에서 청 군대를 기습 선제공격하며 청일전쟁이 시작됐다. 다음 해 4월 17일까지 진행된 전쟁에서 일본은 대승을 거두며 제국주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쟁 승리 후 청으로부터 배상금과 함께 요동반도 등을 할양받으며 더욱 힘을 키워갔다. 반면 오랫동안 아시아 최강국을 자부하던 중국은 ‘오랑캐’로 치부하던 일본에게 치욕적 패배를 당하며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키워나갔지만 청일전쟁 패배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아울러 서구 열강들의 지속적인 침탈..

개항기 - 1910 2022.07.25

< 서울 한복판, 외국 군대가 100년 넘게 차지한 땅 >

서울 한복판, 외국 군대가 100년 넘게 차지한 땅 용산은 오래전부터 한양으로 드는 교통요충지다. 마포나루와 양화진이 인접하고, 나루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큰길이 곁에 있다. 여러 이유로 땅은 군사 용도로 최적지였고, 입지적 이점으로 외국인이 거주하며 자유로운 상행위를 하는 개(開)시장이기도 했다. 용산은 둔지산(屯芝山) 부근 1천여 호 가옥과 백만 기 넘는 공동묘지였고, 배 밭이 지천인 이태원이다. 임진왜란 땐 왜군이, 병자호란과 임오군란 때는 청이, 갑신정변 이후로 일본군대가 암암리 주둔한다. 청일전쟁 때 만리창(萬里倉)으로 상륙한 일본군이 이곳을 근거지 삼아 전쟁을 수행한다. 또한 경복궁 무력 점령(1894.07)으로 조선을 장악하는 정치·군사 지휘소이자, 전쟁물자를 수탈하는 배후기지로 사용한다. 대..

개항기 - 1910 202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