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111

< 막부 체제의 종말과 일본 근대화의 시작을 알린 사건 >

막부 체제의 종말과 일본 근대화의 시작을 알린 사건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에 강제 개국을 요구하며 나타나면서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막부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부는 서구 열강의 강압적인 요구에 못 이겨 불평등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일본 경제는 급변했다. 또한 서구의 사상과 문화가 유입되면서 일본 사회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형성해 나갔다. 막부는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며 무능함을 드러냈다. 여기에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을 중심으로 막부 타도를 주장하는 세력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이들의 반란은 막부 체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쇼군 요시노부는 막부 체제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상황은 더..

동양사 2024.11.09

< 원자탄에 쑥대밭 된 일본 >

원자탄에 쑥대밭 된 일본 원자탄에 황폐해진 히로시마  폭격기 '에놀라 게이'에는 5t에 달하는 거대한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매달렸다. 조종사들은 청산가리를 지급받았다. 어쩔 수 없이 적지에 착륙할 경우에 쓸 비상용이었다. 에놀라 게이와 나머지 두 대의 전투기는 초승달 빛을 헤치며 밤하늘을 날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오전 8시15분 15초, 마침내 폭탄 투하실 문이 열리고, 리틀 보이가 밝은 햇살을 갈랐다. 43초 후, 조종석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으로 가득했고, 충격파가 폭격기를 때렸다. 곧이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끔찍하게" 솟구쳐 오르는 구름이 조종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아래 히로시마는 "타르 양동이처럼" 검게 끓어올랐다.원자폭탄 히로시마 투하  1945년 8월 6일 오전..

동양사 2024.08.09

< 소련군 공격에 무너진 관동군 >

소련군 공격에 무너진 관동군 * 관동군 포로 60만, 붉은 군대의 압도적 승리 일본과 소련은 1941년 4월13일 일·소 중립조약을 맺었었다. 미국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여긴 일본이 북방쪽 안보 걱정을 덜려는 심산에서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 관동군의 위협을 신경쓰지 않고 독일과의 전쟁에 전념할 수 있어 좋았다. 일반적으로 어느 조약이든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는 지켜지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깨지기 마련이다. 소련이 1945년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중립조약은 깨졌다. 8월9일 새벽 소련군은 병력 150만, 탱크 5500대, 비행기 5000대를 동원해 그야말로 물밀 듯이 관동군을 밀어붙였다. 지휘관은 극동군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대장이었다.관동군의 주력은 중국 본토로 또는 태평..

동양사 2024.01.27

< 대한해협에서 발트함대를 궤멸시킨 日, 러일전쟁 승리 >

대한해협에서 발트함대를 궤멸시킨 日, 러일전쟁 승리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프랑스는 비스마르크 국제 체제가 강박했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났다. 러시아는 당시 서쪽 국경을 맞대고 있던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동맹국 프랑스를 통해 견제하면서 만주와 한반도를 향한 팽창에 박차를 가했다. * 러-프 동맹, 러시아의 동진 뒷받침 이미 러시아는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선을 넘어서 1858년 아이훈조약,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태평양 연안의 연해주를 빼앗았다. 현재까지도 이 지역에는 지정학적 분쟁 가능성이 남아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러시아에 존재했던 지리정치적 심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유럽에서 우리는 식객이요 노예였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주인이다. … 두 철도를 놓기만 하..

동양사 2023.10.26

< 1942년 미드웨이 해전 중 침몰한 美日 항공모함 >

1942년 미드웨이 해전 중 침몰한 美日 항공모함 한편 태평양 전쟁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며 일본의 패망을 앞당긴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지 6개월 후인 1942년 6월 일어났다. 당시 미군은 암호를 해독해 일본군이 전략적 요충지인 미드웨이 해역을 공격한다는 정보를 파악, 가가와 아카기를 비롯한 항공모함 4척과 항공기 약 250대 이상을 격추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군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USS 요크타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대공포가 공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환점 중 하나인 미국과 일본의 미드웨이 해전(1942)당시 격침된 3대의 항공모함이 바닷속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대양..

동양사 2023.09.30

< 왜덕산에 마련된 왜군 무덤 >

왜덕산에 마련된 왜군 무덤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에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무덤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 있는 왜덕산은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어주었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여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본 진도 백성들이지만 해변으로 밀려온 100구가 넘는 시신들을 수습해 양지바른 야산에 묻어줬다.

동양사 2022.09.24

< 청일전쟁-평양에서 기생파티 벌인 청나라 군사 >

청일전쟁-평양에서 기생파티 벌인 청나라 군사 1895년 3월 20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과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시모노세키 연회장 춘범루 1층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여전히 진행 중인 청일전쟁을 끝내고 강화조약을 맺겠다는 자리다. 대화 내용은 청나라(이하 중국) 측 ‘馬關議和中日談話錄(마관의화중일담화록·편자 미상)’과 일본 외무성 ‘일본외교문서’(28권 2책, p383, 1089.일청강화조약체결 ‘3월 20일 회견요록’)에 기록돼 있다. 의례적 인사말이 오가고 이토가 이홍장에게 이리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 “10년 전 중국이 개혁해야 한다고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런 모습으로 재회하니 유감입니다.” 이홍장: “대신께서 중국이 나라가 넓고 사람이 많아 개혁을 서둘러야 한..

동양사 2022.02.23

< 인도, 망명 티베트인 부대 중국 국경 배치 >

인도, 망명 티베트인 부대 중국 국경 배치 인도에는 중국에서 망명한 티베트인으로만 구성된 특수국경군이라는 막강한 전투부대가 있다. 1962년 창설된 SFF는 현재 7개 대대 규모로, 병력은 5000여 명이다. 인도군은 그동안 SFF를 중국이 아닌 파키스탄과 국경지대에 배치해왔다. 중국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는 SFF 병사들이 자칫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무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인도군은 이처럼 중국과 관계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지만 중국군이 국경지대에서 계속 도발을 일삼자 지난해 8월 SFF를 히말라야산맥 남쪽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 판공호(湖) 인근에 전격 투입했다. SFF 병사들은 중국군의 강력한 저항에도 해발 4200m에 자리한 판공호 남쪽 언덕의 고지 두 곳을 기습 점령했다. SFF 병..

동양사 20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