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신군부 정부 124

< 1980년 5월 항쟁 불씨 지핀 전남대학교 >

1980년 5월 항쟁 불씨 지핀 전남대학교 광주에서는 5월 14∼16일 도청 앞 광장에서 민족·민주화성회가 열렸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는 16일 밤 성회를 끝내면서 '만약 휴교령이 내려지면 오전 10시 학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12시 도청으로 모이자'고 약속했다.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평온하던 제주도까지 포함시키고, 전국 대학에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계엄군은 사실상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대학을 점령했다. 전남대에는 7공수 33대대가 내려왔다. 공수부대는 학내에 있던 학생 69명을 붙잡았다. 조선대에선 43명을 체포했다. 한밤의 폭거였다.505보안부대를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단도 예비검속에 나섰다. 합수단은 검속 대상자 22명(전남대 12명, 조선대 10명)을 선정했다..

< 계엄이 부른 지옥, 순화교육 >

계엄이 부른 지옥, 순화교육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법원 등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80년 10월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38살의 이부영은 한겨울 교도소 연병장에서 순화교육을 받았다. 교관들은 연병장에 쌓아놓은 눈 무더기 속으로 기어서 파고 들어가라고 했고, 못하면 무자비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견디지 못한 재소자가 벌떡 일어서 항의하자 교관은 그를 발가벗긴 뒤 성기를 잡게 하고는 지휘봉으로 수차례 내려쳐 피가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재소자들은 공포에 떨었다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등 교정시설 재소자들에게 ‘삼청교육’과 같은 방식으로 군사훈련과 가혹행위를 한 ‘재소자 특별 순화교육’이 법무부의 별도 입안에 따라 6년간 자행된 사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

< 장세동 “5·18 사흘전 광주 갔다” 43년 만에 확인 >

장세동 “5·18 사흘전 광주 갔다” 43년 만에 확인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 경호실장 등을 지내며 ‘부동의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세동(86)씨가 최근 와 한 통화에서 “5·18 직전인 1980년 5월15일에 광주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당시 공수특전사령부(특전사) 작전참모(대령)였다. 5·18 직전 장씨의 광주 방문은 이상한 전 특전사 군수참모 등이 검찰 조사 등에서 진술한 바 있지만, 장씨가 직접 날짜를 특정해 방문 사실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광주에서 아직 특별한 소요 상황이 벌어지기 전 신군부의 핵심이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심복인 장씨가 광주를 찾은 것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장씨는 항쟁 기간인 5월21일, 24일, 26일에도 광주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에 머물며 계엄..

< 봉황새 1호 작전의 진실 >

봉황새 1호작전의 진실 1982년 2월 5일, 제주도 한라산에 위치한 어리목 관리소에서는 근무하던 청원경찰 양송남씨는 제주도청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긴급전화를 받는다. 다음날 새벽에 청와대 경호팀이 한라산 등반을 할 예정이니 안내를 하라는 지시였다. 며칠 동안 계속된 폭설로 기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등산을 하겠다는 게 의아했지만 양씨는 일단 상부의 지시에 따랐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약속장소에 나와있던 것은 청와대 직원이 아닌, 대규모의 군인과 경찰들이었다. 양씨는 그제서야 일반적인 산행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섣불리 질문조차 하기 어려웠다. 양씨는 한라산 등반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 군경과 함께 산으로 올랐다. 이들의 진짜 정체는 청와대 경호팀이 아니라, 한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