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이 이토에 총 쏜 현장 안 의사 기념관 초입의 안 의사 전신 동상 바로 옆에는 안 의사가 1910년 3월 사형 집행 전 쓴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라는 여덟 글자 편액이 걸려 있었다. ‘국가의 안위가 걱정돼 애를 태운다’는 뜻이다. 구한말 망국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서른살 목숨을 바쳤던 조선 청년은 100여년 뒤 멀쩡한 나라를 위험에 몰아넣은 한국 최고지도자의 행동을 예상이나 했을까. 안 의사의 글씨는 매우 거칠었고 흔들렸다.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과 지린성 차이자거우, 랴오닝성 다롄(뤼순). 안 의사는 그의 동지 우덕순, 조도선 등과 함께 1909년 10월26일 오전 하얼빈에서 일본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뤼순에서 수사·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이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