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 닿는 시들 533

< 천사를 만난 날-나태주 >

천사를 만난 날-나태주 갑자기 날씨 쌀쌀해져겨울 외투 꺼내 입고 모자를 쓰고마스크까지 하고서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마주 오던 여자아이 둘그 가운데 한 아이가"안녕하세요?"꾸벅 인사를 한다. 나도 아이를 따라서 "안녕?"하면서 자전거로 비켜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뒤를 돌아보았더니 같이 가던 한 아이가 인사한 아이에게 묻는다."누구야? 누군데 인사해?"그 아이 묻는 말에무어라 대답했는지 듣지는 못 했지만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오늘 나는 천사 한 사람을 만났다.비록 오늘 속상한 일이 있다 하여도너무 많이는 속상해하지 말아야지.

< 가을의 전갈-나태주 >

가을의 전갈-나태주 만나자가을에 만나자 그 말에쿨렁 가을이 먼저가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즈금은 봄의 끝자락아직은 여름도 아닌데 강변 길 산성 길함께 거닐자 그 말에산성 길 굽이굽이강변 길 멀리멀리마음 속으로 들어와펼쳐졌습니다. 그것도 오래전 어여삐헤어진 사람오래 잊혀지지 않고꽃으로 남았던 사람짧은 전갈에.

< 가인을 생각함-나태주 >

가인을 생각함-나태주 길이라도 바람 부는모퉁이길우리는 만났다만나서 서성였다. 둘이서 바람이었고둘이서 먼지였고또 풀잎이었다. 골목이라도 달빛서성이는 골목우리는 서툴게 손을 잡았고서툴게 웃었다. 그리고는 서로의 눈을들여다보며 눈물글썽이다가 헤어졌다. 끝태 우리는바람이었고 먼지였고또 다시 달빛이었다.

< 백지 상태-황유원 >

백지 상태-황유원 꿈에 백발이 되었다 머릿속에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벌써 강을 다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머리 위엔 이미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머릿속이 새하얘서 머릿속엔 아직 눈이 내리나보다 눈보라가 몰아쳐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나보다 보이지 않으면 좋다 아무 데로나 가도 상관없으니까 보이지 않으면 찍힌 발자국들도 다 사라질 테니까 이제 나는 다른 땅 위에 서 있다 거기서 뒤돌아본 강 위론 아직 눈이 내리는 듯하고 이제 저기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 하나가 추위 속에 견고해진다 폭설은 백지에 가깝고 가끔 눈부시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나는 또 백지를 본다 백지를 보여준다 내가 쓴 거라고 내가 쓴 백지가 이토록 환해졌다고

< 새해 아침의 당부-나태주 >

새해 아침의 당부-나태주 올해도 잘 지내기 바란다 내가 날마다 너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너를 위해 부탁하니 올해도 모든 일 잘 될 거야 다만 너는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걸어서 앞으로 앞으로 가기만 하면 돼 분명 네 앞에 푸른 풀밭이 열리고 드넓은 들판이 기다려줄 거야 다만 너는 그 풀밭 그 들판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가기만 하면 돼 의심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네가 가는 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네가 함께 가줄 것을 믿어라.

< 저물녘에-김병진 >

저물녘에-김병진 하루의 피로가 서서히 찾아드는 저물녘 무심히 거리를 걷노라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쓸쓸함. 가만히 그 자리에 섰노라면 길게 뻗은 그림자 위로 조용히 어둠이 깔리며 아련히 스며드는 외로움. 다시금 긴 그림자가 움직일때쯤 이 세상의 모든 쓸쓸함·외로움 모두 사라지고 나의 그림자는 멀리 어둠과 함께 사라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