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83

<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 10.26사태 >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 10.26사태 현장검증에서 당시 중정부장인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시해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44년 전 10월 26일은 10.26이라 불리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안가에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 행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도중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미리 준비한 권총으로 자신의 숙적인 차지철 경호실장을 쏜 후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권총을 발사했다. 이후 김 부장은 차 실장과 박 대통령에게 다시 총격을 가했다. 박 대통령은 바로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송 중 사망했다..

박정희 정부 2023.10.25

< 1·21 사태 이후 1969년 고등학교에 필수 과목으로 도입된 교련 >

1·21 사태 이후 1969년 고등학교에 필수 과목으로 도입된 교련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300m 앞까지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69년 유사시에 고등학생들을 병력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고교 필수 과목으로 교련이 도입됐습니다. 남학생들은 총검술을 포함한 군사 훈련을, 여학생들은 주로 붕대를 감는 등 응급 처치법 등을 배웠는데요, 교복을 입어야 했던 시절, 학교에서 교복 대신 교련복을 입었던 남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985년 영남고와 경북고, 당시 경일여상의 교련 수업 모습. https://youtu.be/K_BYQhDszVM

박정희 정부 2023.06.25

< 조폭까지 동원해 만든 '1100도로' >

조폭까지 동원해 만든 '1100도로' 한라산 서쪽을 가로질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1100도로. 1100도로의 첫 명칭은 한라산 제 2횡단도로였습니다. 한라산 동쪽 지역에 5.16도로가 뚫리면서 개발이 시작되자, 한라산 서쪽을 횡단하는 도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습니다. 이에따라 1967년 '대관광도로'라는 이름으로 1100도로 건설 계획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지사가 바뀌면서 대관광도로 계획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지화됐습니다. 그러나 다음해인 1968년 1100도로 건설 공사가 갑자기 시작됩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건설현장에 투입한 '국토건설단' 정부에서 국토건설단을 공사 현장에 투입하겠다며, 도로 건설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국토건설단이지 모두 조직폭력배와 부랑자, 병..

박정희 정부 2022.12.06

< 파독 광부 1진 123명 출발(1963년) >

파독 광부 1진 123명 출발(1963년) 1963년 12월 21일 오전 10시, 한 무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에어프랑스 전세기에 오르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들은 서독으로 떠나는 파견 광부 제1진 123명이었다. 애초 출발 예정자는 126명이었으나 3명은 포기했다. 광부 일행은 당시 경제기획원 이창제 사무관 인솔로 도쿄에 잠깐 기착한 다음 북극을 거쳐 22일 오후 6시 서독 ‘두센도르프’에 도착했다. 곧이어 그들은 서독 함보르터 탄광과 에치바일러 탄광으로 향했다. 제2진 126명은 같은 달 26일 루프트한자 전세기를 타고 떠났다. 이후 1977년까지 7,900여 명의 광부가 독일로 파견됐다. 1966~1976년 사이엔 간호사, 간호조무사 12,000여 명도 서독의 병원과 요양소에 배치됐다. 전..

박정희 정부 2021.12.21

< 제주 '숲의 터널' 뒤에 박정희 강제노역의 역사 서려 있다 >

제주 '숲의 터널' 뒤에 박정희 강제노역의 역사 서려 있다 왜 멀리 제주도에 있는 도로 이름이 ‘5ㆍ16 도로’이고, 이 곳이 왜 중요한 한국현대사의 현장인가. 이 도로의 이름이 5ㆍ16도로인 이유는 이 도로가 박정희정권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한라산 7부 능선을 넘어 제주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도로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다니던, 길이 44㎞의 오솔길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제주곳곳에 지하벙커 등을 만들었는데, 당시 진지가 있던 오름과 한라산자락을 잇는 도로를 건설했다. 헌데 48년 비극적인 4ㆍ3이후 정부가 주민들의 한라산 입산을 금지하면서, 이 도로는 버려지고 말았다. 5ㆍ16쿠데타 직후인 1962년, 군사정부는 건설장비와 국토건설단..

박정희 정부 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