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 228

< 인천상륙작전, 4가지 비밀 계획 있었다 >

인천상륙작전, 4가지 비밀 계획 있었다 1950년 9월 15일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습작전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보름도 지나지 않은 같은 달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했습니다. 보급로가 끊긴 북한군은 항아리에 갇힌 물고기처럼 허둥대다가 남북에서 닥친 공격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에 급급했던 우리 군은 드디어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습니다.인천상륙작전 직전의 전황은 ‘불리’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낙동강까지 진군한 북한군에 맹폭을 가하면서 힘을 빼고 있었지만 이미 국토의 90%를 빼앗긴 상태라 전세를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적진에 뛰어드는 모험..

6.25전쟁기 2024.08.18

< 이승만도 성공해냈는데. 맥아더는 여기서 실패했다 >

이승만도 성공해냈는데. 맥아더는 여기서 실패했다 38선이 지나는 도로에는 38선 표지가 적지 않게 설치돼 있다. 표지로서 가장 서쪽은 경기 연천의 백학면 통구리 453, 청정로에 있다. 가장 동쪽은 강원 양양의 기사문 해변 근처, 7번 국도 변의 38선휴게소에 있다. 바로 이 38선에 유엔군과 국군이 도달했다. 북한이 남침 전면전을 개시한 38선은 그대로지만 이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해 북진할 것인가. 38선은 또다시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국군이 38선을 돌파하기 한 달 전인 9월 1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통일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유엔의 지도 지침 아래 다른 나라와 더불어 그들이 권리를 향유하도록 책..

6.25전쟁기 2024.05.05

< "피난민 1만4000명 구했다" 한국전쟁 성탄절 기적 빅토리호 >

"피난민 1만4000명 구했다" 한국전쟁 성탄절 기적 빅토리호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흥남철수작전이 성탄절 이브인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지에 소개됐다. 흥남철수작전은 한국전쟁이 벌어진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약 25만명의 북한군과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함경남도 흥남항에 집결한 미군과 한국군이 피란민 9만여 명과 함께 빠져나온 대규모 철수 작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철수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료돼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려 왔다. WP는 24일 ‘한국전쟁 크리스마스의 기적: 59인승 배로 어떻게 피란민 1만4000명을 구했나’라는 기사를 통해 레너드 라루 선장이 이끌던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기적의 배’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연을 전했다. 1939~..

6.25전쟁기 2023.12.25

< ‘평양 폭격’ 사진 >

‘평양 폭격’ 사진 한국전쟁 시기 미군 공중폭격에 대해서는 민간지역 폭격을 부정하는 주장과 초기부터 무차별 폭격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맞서왔다. 한국전쟁 연구자 김태우는 두 ‘신화’를 벗겨내기 위해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 문서 10만장을 뒤졌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미 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였다. 일일임무보고서는 미군 지도부에 의해 검열되지 않은 1차 사료여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였다. (창비)으로 2013년 출간된 연구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초기 군사목표에 한정한 ‘정밀폭격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전폭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목표지역에서 정찰 후 폭격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전폭기를 안내하는 전술항공시스템은 불안정했다. 조종사들은 단시간 내에 육감과 우연, 자의적 판단..

6.25전쟁기 2023.01.15

< 중국, 6·25 참전 꺼리다 입장 바꾼 이유는 >

중국, 6·25 참전 꺼리다 입장 바꾼 이유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과 국군은 이후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거쳐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 중국 국경에까지 진격합니다. 하지만 한 달쯤 뒤인 10월 19일 중국군 26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6·25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세는 다시 역전이 되고 맙니다. 전쟁은 그렇게 장기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중국은 왜 6·25 전쟁에 참전했을까요. 중국은 6·25 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했다고 해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부릅니다. 지금도 '미 제국주의에 맞서고 혈맹 관계인 북한을 돕기 위한 대결단이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 초기 중국이 참전을 꺼렸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사료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6.25전쟁기 2022.09.13

< '장진호 전투'의 진짜 승자는? >

'장진호 전투'의 진짜 승자는? 1950년 11월27일 미 해병 1사단은 함경남도 장진호 근처에서 중국군 12개 사단에 포위됐다. 중국군 병력은 미 해병보다 10배 많았다. 강추위 속에 고립된 미 해병 1사단은 전멸 위기에 빠졌다. 장진호 일대는 해발 1000~2000m 개마고원 고산 지대다. 낮 영하 20도, 밤 영하 30도의 강추위가 몰아쳤다. 탱크, 트럭 등 각종 장비의 윤활유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포를 쏘면 얼어붙은 포신이 충격으로 깨졌다. 곳곳에 매복한 중국군이 기습공격을 해왔다. 미 해병은 전사자를 땅에 묻으려고 했으나 언 땅을 팔 수 없자, 주검을 목재처럼 세 겹, 네 겹으로 쌓아 올렸다. 미 해병 2개 연대는 악전고투끝에 12월4일 사단사령부가 있는 하갈우리(장진호 남쪽 끝)에 집결..

6.25전쟁기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