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항쟁 불씨 지핀 전남대학교
광주에서는 5월 14∼16일 도청 앞 광장에서 민족·민주화성회가 열렸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는 16일 밤 성회를 끝내면서 '만약 휴교령이 내려지면 오전 10시 학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12시 도청으로 모이자'고 약속했다.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평온하던 제주도까지 포함시키고, 전국 대학에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계엄군은 사실상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대학을 점령했다. 전남대에는 7공수 33대대가 내려왔다. 공수부대는 학내에 있던 학생 69명을 붙잡았다. 조선대에선 43명을 체포했다. 한밤의 폭거였다.
505보안부대를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단도 예비검속에 나섰다. 합수단은 검속 대상자 22명(전남대 12명, 조선대 10명)을 선정했다. 한밤중 난입한 수사단에 정동년 김상윤 등 광주지역 민주인사 12명이 붙잡혀갔다.
대학엔 휴교령이 내려졌다. 18일 일요일 오전 10시, 학생들이 학교로 향했다. 이틀 전 민족·민주화성회 때 약속을 기억한 학생들이었다. 학생 200여 명이 교문을 막아선 공수부대와 용봉천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용봉천은 지금 복개공사가 이뤄져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계엄군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고 외쳤다. 일부 학생은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했다. 진압봉을 치켜든 공수부대가 달려들었다. 무자비한 폭행이 가해졌다.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쫓아 골목까지 내달렸다. 잔혹했다.
학생들은 공수부대의 폭행을 시민들에게 알리자며 도심으로 향했다. 전남대 앞에서 광주역(신역) 광장, 시외버스공용터미널을 거쳐 금남로로 갔다. 학생들은 가톨릭센터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충장파출소 유리창이 시위대에 의해 깨졌다.
공수부대는 처음부터 진압봉과 대검을 사용하며 피를 불렀다. 청각장애인 김경철은 제일극장 부근에서 공수부대에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실신했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진 김경철은 이튿날 새벽 국군광주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18일 하루 연행자만 405명, 일반인도 184명 포함됐다.
20일엔 전남대학교에 머물던 7공수가 3공수여단으로 교체됐다. 7공수는 조선대학교로 이동했다. 3공수는 그날 밤 광주역 광장 시위에서 붙잡은 학생과 시민을 전남대학교 이학부 건물에 가두고 구타했다.
21일은 비무장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었다. 그보다 2∼3시간 전, 공수부대는 전남대 정문 앞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 총격을 받은 고등학생 이성귀가 사망했다. 공수부대는 이성귀의 시신을 전남대 교정 뒷동산에 암매장했다.
같은 날 오후 2시경엔 전남대 앞 주택가에서 임신 8개월의 최미애를 조준 사격해 사망케 했다. 금남로뿐 아니라 전남대 부근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3공수여단은 이후 광주교도소로 이동했다. 21일 부처님 오신 날의 일이었다.
전남대학교는 5·18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이다. 5월 18일 학교에 가던 학생과 학교 출입을 막는 공수부대의 충돌이 도화선이 됐다. 5·18사적 제1호 표지석이 정문 앞에 세워져 있다. 정문은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정문을 한쪽에 그대로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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