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신군부 정부

< 이 한 장의 사진이 없었다면-박종철, 이한열 열사 >

엑칼쌤 2013. 12. 7. 15:19

이 한 장의 사진이 없었다면-박종철, 이한열 열사

 



7백여 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앞세우고 학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금 곱씹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변명이다.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또 기록한다. 진실의 묵직한 울림을 얄팍한 간계로 막을 수는 없다.

*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그 사진

당시에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단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다. 말이 돼야 말이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축소와 은폐에만 급급한 정부에 분노했다. 그날도 연세대 학생들은 교내집회를 마치고 정문 밖을 막 나서던 참이었다. "독재 타도, 전두환 물러가라"란 구호를 몇 번 외치기도 전에 최루탄이 쏟아졌다.

후퇴하던 시위대에서 갑자기 한 학생이 맥없이 쓰러졌다. 뒷머리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쏟아졌고 몸은 심하게 떨렸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 하나가 다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곧이어 네다섯 명이 더 달려와 쓰러진 학생을 부축해 세브란스 병원 쪽으로 옮겼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중, 쓰러진 학생은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아 고통에 신음하며 내뱉었다.



교내 집회를 마친 연세대 학생들이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한열 열사가 마스크를 하고 교문 앞에 나와 있다. 이 사진은 로이터에 임시 사원으로 근무하던 정태원 기자의 동생 정국원 기자가 찍은 것이다.




한 학생이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이한열 열사를 부축해 옮기고 있다. 자욱한 최루탄 가스 사이에 서 있는 이 두 학생은 연세대에서 열린 고문 종식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가 후 경찰과 충돌했던 5백여 명의 학생 시위대 소속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당시 정권의 야만적인 행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최루탄을 머리 위로 쏴 시위대를 해산하기보다는 신체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고의로 직격 발사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문제가 된 사격자세를 취한 장면도 정 기자의 사진에 담겼다.

이한열.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거웠던 청년은 그렇게 식어 우리 가슴 속에 강철이 돼 남았다.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다시 분연히 일어났다. 1987년 6월 10일. 그로부터 17일간, 전국에서 5백만 명 이상이 참가해 2145회의 시위가 열렸다. 그리고 35만발의 최루탄이 발사된 후에야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