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고려시대

< 제주 해안간의 온평리 환해장성 >

엑칼쌤 2021. 2. 20. 11:48

제주 해안간의 온평리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제주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돌담이다. '탐라의 만리장성'이라고 불릴 만큼 그 길이가 무려 300여리(약 120km)나 되었단다.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14곳)만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내가 보고 있는 온평리 환해장성은 온평리 하동 해안가에서 신산리 마을 경계까지 2120m라고 한다. 다른 곳보다 비교적 긴 편인 셈이다.

 

성벽인 만큼 환해장성을 쌓은 목적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곳 제주 해안가 성벽은 조금 다른 '적'이다. 고려 말기 삼별초(三別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를 잠깐 정리해보면, 고려 고종 19년(서기 1232년)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遷都)했던 조정은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 몽고와 화친을 맺게 된다. 그런 뒤 원종 11년(서기1270년) 강화에서 개경으로 38년 만에 환도(還都)한다.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講和)에 반대한 삼별초는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珍島 龍藏城)을 쌓아 항거한다. 얼마 가지 못해 여몽 연합군에 의해 본거지를 잃는다. 한 수 앞선 조정은 진도를 탈출한 삼별초가 제주도로 향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영암부사를 보내어 해안가에 성곽을 구축하게 한다. 그것이 환해장성의 시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도에서 제주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제주의 관군을 물리치고 상륙에 성공한다. 환해장성의 주인이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뒤로 환해장성은 여몽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한 성곽으로 활용된다. 삼별초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에는 왜구의 습격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는 해안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벽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