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사

< 고대 문화유산 간직한 페루-잉카제국 >

엑칼쌤 2009. 11. 30. 10:45

고대 문화유산 간직한 페루-잉카제국

 

 

고대 잉카인들의 삶의 지혜가 오롯이 남아 있는 페루는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국가이다. 남미의 뼈대인 안데스산맥아마존 강을 품고 있는 이곳은 수준 높은 잉카문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나라다. 우리에게도 잉카인들의 영원한 수도 쿠스코, 공중의 도시 마추픽추 등은 남미를 대표하는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식민문화와 잉카 고대문화가 혼재된 페루의 도시들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아주 매력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여행지로 전혀 손색이 없는 쿠스코와 마추픽추는 인류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이다.

 

 

◆ 쿠스코…잉카제국의 영원한 수도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잉카의 유적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쿠스코는 페루의 관광 수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심에는 고대 잉카의 석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인파로 북적이는 비좁은 거리에는 잉카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잉카제국으로 온 것 같은 착각이 쿠스코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또한 쿠스코의 명소들은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건축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아름다운 교회들과 유서 깊은 저택들이 잉카 유적들과 어우러져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였다. 특히 잉카시대에 축조된 석벽으로 둘러싸인 쿠스코의 좁디좁은 거리를 걷다 보면 옥외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잉카 유적은 쿠스코의 토대를 이루었던 것으로 오늘날까지 훼손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벽은 쿠스코 전역에 남아있지만 다른 곳보다 보존상태가 우수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로레토거리와 산토도밍고 교회 석벽이다. 로레토거리는 쿠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석벽들 중 하나이자 아클라우아시(태양 처녀의 신전)를 둘러싸고 있던 석벽이다. 그리고 코리칸차(태양의 신전) 터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교회 석벽은 잉카시대의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지금은 교회가 무너지고 없지만 둥글게 돌아간 6m 높이의 잉카 석벽은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마추픽추…잉카제국의 결정체

쿠스코에서 112㎞ 정도 달려가면 세상에서 불가사의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밀림과 우루밤바 강, 그리고 해발 2300m의 고원 위에 세워진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의 성스러운 땅이다. 잉카인들의 계곡과 땅을 침략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산 정상에 세운 이 도시는 한마디로 거대한 '요새의 도시'다. 스페인 침략에도 완벽하게 살아남은 잉카문명의 결정체인 마추픽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 예일대학 교수인 하이램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다.

해발 2300m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페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인류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은 세계문화유산이다. 고대 잉카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추픽추는 '공중 도시' '잃어버린 잉카의 도시'라는 별칭과 함께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은 도시다. 산과 밀림, 그리고 절벽 등에 가려져 산 밑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마추픽추는 인디언과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산속으로 이주한 잉카 사람들의 지혜가 함축된 삶의 터전이다.

잉카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거대한 석회암을 그 높은 산 정상까지 운반해 건물을 지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는다. 15세기께 지어진 이 요새는 그 설계나 완성도에 있어서 잉카문명 최고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총면적이 13㎢에 달하는 이 '공중도시'의 각 건물들은 주로 군사와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건축되었다.

도시 외곽은 높이 6m, 두께 1.8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 안에는 1만여 명의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외벽과 내벽에는 석회암, 문과 문틀에는 나무, 그리고 천장에는 짚이 주재료로 쓰였다. 3000여 개 계단과 40단으로 이뤄진 계단식 밭, 그리고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 등이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도시로 만들었다.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이곳은 지구별의 도시가 아닌 외계도시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 페루 문명의 시작과 끝  >

   

하늘도시 마추픽추·태양신 사원

기원전 1800년 농경·토기제작 등 고대문명 씨앗
잉카문명은 15세기에 4개 지역문화 합쳐져 탄생
태양신·산신 숭배 등 한반도 고대문화와 비슷 '눈길'

↑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마추픽추 유적. 잉카인들이 경작했던 계단식 밭이 선명하다.

↑ 최광식(오른쪽에서 두번째)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를 찾아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11일 개막하는 '태양의 아들, 잉카' 전을 한국일보와 공동 주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이 잉카문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인 페루 지역을 지난 9월 둘러보고 돌아왔다.최 관장이 취임 이후 가장 힘을 쏟은 일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 문명전 시리즈' 개최와, 해외 유명 박물관에서의 한국유물전 개최다. 박물관은 전 국민의 '공공 놀이터'이자 '살아있는 교육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강제로 동원된 박물관 관람과 암기 위주의 사학 교육이 즐거운 역사 배우기와 박물관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 박물관이 제 기능을 할 때가 됐다"고 역설한다. "해외에 가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볼 수 있는 세계 주요 문명의 보물들을 전 국민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반대로 외국에 한국유물을 전시하는 기회의 확대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세계 문명전 시리즈' 세번째 전시인 '태양의 아들, 잉카' 전도 이 같은 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다.최 관장은 페루 현지에서 잉카문명 유적지 답사와 함께 '태양의 아들, 잉카' 전 전시 유물을 대여해준 기관들을 두루 방문했다. 최 관장이 전시 개막에 맞춰 잉카문명사 및 유물에 관해 기고한 글을 이번주부터 매주 목요일자에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정말로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대학 시절 잉카문명이 세계 6대 문명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언젠가 한번 꼭 가서 직접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36년이 넘게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LA미술관으로부터 한국미술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LA에 가는 차에 잉카문명이 서려있는 페루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신종 플루가 유행하고 고산증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마추픽추를 보고 싶다는 열망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비행기 창을 통해 보이는 웅장한 안데스 산맥으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않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해서 본 쿠스코와 마추픽추의 거석문화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잉카는 1430년 이후 약 100년 간 중앙 안데스를 중심으로 제국을 다스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잉카문명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천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5,000년 전 고대 제사 유적인 카랄을 비롯하여 기원 전후의 강력한 모체 왕국, 그리고 신비의 나스카 문화가 있었다. 또한 와리 제국과 치무 왕국 등은 이후 잉카제국이 세워질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구석기시대는 1만 2,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초기 농경생활을 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며 살던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발견된 선사주거지와 같은 주거지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1800년부터 고대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농경의 발전, 토기의 제작, 방직술의 발명, 노동 분화에 의한 도시의 중심 건축 등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집약적인 농경이 확산되었으며, 많은 종류의 곡식이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농업경제는 마을을 이루게 하였으며, 잉여생산물을 갈무리할 수 있는 토기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 챠빈문화(기원전 1200~300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화의 조각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나타나고, 제사장이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자로 등장한다. 마치 고조선의 단군왕검이 제사와 정치를 모두 주관한 제정일치적 존재인 것과 같은 것이다.

한편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는 여러 지역에서 문화들이 발전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체문명(기원전 100년~기원후 700년)이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종교와 제의에 관한 자료들이 나타나며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들도 등장한다. 페루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이 시기의 다양한 토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토기의 문양들이 매우 다채로웠다. 이 시기 황금유물을 간직한 시판왕 무덤 유적의 유물과 순장 흔적은 사회적 계층화의 진전과 국가 형성을 증명한다. 같은 시기의 스카문화(기원전 100년~기원후 600년)는 지상회화의 성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와리제국(600~900년)은 여러 지역에서 발달된 문화가 일단 통합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도시가 정비되고 종교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장례를 통하여 문화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세기가 되면 다옥熾だ막?분할되어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람바예케문화, 치무문화, 잉카문화 등 10여개의 지역으로 세력이 분화되고 문화가 각각 발전되어 나갔다. 그러다 15세기(1430년)에 4지역 세력의 연맹체인 잉카제국이 성립풔?것이다.

잉카는 해발 3,400미터에 있는 쿠스코를 수도로 하여 4개 지역 연맹세력을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도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삭사이와망 유적은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모양새를 보면 군사적 요새의 역할도 담당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종교적 중심지로서 고대 한반도 삼한의 별읍인 소도(蘇塗)를 연상시켰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잉카문명에서 한국 고대의 문명과 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라 하겠다. 고대의 왕권과 제사와의 관계, 제사유적과 군사유적의 복합성, 태양신 숭배 신앙과 산신신앙과의 관계 등이 우리의 것과 너무 닮아 한국 고대문명의 유적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음 회부터는 그 타임머신을 타고 안데스의 고대문명과 잉카문명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작정이다.

 


< 안데스 문명을 잉카로 부르지만 사실은 '100년 왕국' >


프리 잉카와 잉카문명


우리는 잉카문명이라고 하면 흔히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잉카제국은 15세기(1430년)에 성립되어 16세기(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에 의해 멸망 당할 때까지 약 100년 정도 존속한 왕국이다.

그러나 서구에 잉카문명으로 알려지면서 이 지역의 문명을 대표하는 용어처럼 정착됐기 때문에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을 통상 잉카문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조선 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하였지만 이 시기에 한반도가 서구에 알려졌으므로 조선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문화 전체가 조선의 문화라고 소개된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잉카 이전의 프리 잉카 시대에도 '태양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4개 지역의 연맹으로서의 잉카제국 이전의 문명을 모두 잉카문명이라고 하여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정치적 의미의 잉카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문화적 의미로는 태양의 신화를 가진 안데스의 고대문명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잉카는 협의로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광의로는 잉카제국 이전의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 전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의 신화를 가진 잉카문화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태양과 함께 항상 달이 짝을 이루며 숭배의 대상이 되어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이 공존한다. 그 문화는 음과 양의 조화, 중앙과 지방의 조화, 잉카문화와 서구문화의 조화를 이루며 현재 페루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시판왕, 20세기를 놀라게 한 고고학적 발견>

 

 

1800년 前 시판왕 피라미드, 인류 고대 국가의 비밀 생생히

 

 

높이 35m 피라미드 무덤에서 황금유물 쏟아져

 

 

3명의 부인·경호원 등 순장… 강력한 왕권 시사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북부 도시인 치클라요 지역에 '20세기 세계 3대 고고학적 발견'의 하나로 꼽히는 시판왕의 피라미드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 페루 리마에서 400km 떨어진 남부 해안 지역에 그려진 거대한 지상회화 '나스카 라인'. 지표면을 파낸 뒤 아래의 밝은색 흙이 드러나도록 해 명암이 대비되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은 거미 모양의 나스카 라인이다.

 

↑ 1987년 페루 북부 람바이예크 계곡에서 발견된 시판왕의 피라미드. 흙 벽돌로 지어진 두 개의 커다란 제단과 이를 연결한 기단, 그리고 장례용 기단으로 구성돼 있다.(왼쪽 사진) 시판 유적을 발굴한 월터 알바(오른쪽 사진의 왼쪽) 시판박물관장과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

 

↑ 기원후 300년경 페루 북부 지역의 맹주였던 시판왕 무덤의 발굴 당시 모습. 목관에 안치된 왕과 3명의 부인, 2명의 전사, 1명의 파수꾼의 유골 및 수백 점에 달하는 황금 장식 유물과 토기 등 화려한 부장품이 발견됐다.

 

 

1987년 페루 고고학자 월터 알바의 조사팀은 당시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모체 왕의 관을 시판 유적 무덤에서 발굴하였다. 무덤 주인이 왕임을 강조하여 모체 왕을 '시판왕'이라고 칭하였다. 시판왕은 구리로 이어 만든 목관에 안장되어 있었으며 3명의 부인과 2명의 전사, 각 1명의 어린아이, 감찰관, 경호원이 발이 잘려나간 채로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라마 두 마리와 개 한 마리도 발견되었다.

목관이 안치된 옆방에서는 수백 개의 토기와 소량의 장식품, 음식이 발견되었고, 남벽의 움푹 패인 공간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은 의복, 무기, 홀, 방울, 머리장식, 기장, 금제 및 금동제 복식, 수천 개의 조개 구슬로 만든 가슴 꾸미개, 목걸이, 코 장식품, 왕관, 모자이크 무늬의 귀 장식품 등 수많은 부장품들로 덮여 있었다. 이 모습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태양의 아들, 잉카' 전에 복원 전시되고 있다.

시판왕과 함께 묻힌 주검들은 왕의 생전 측근들로 추측되며, 그들이 지닌 장식품들로 그 지위와 역할을 말해주고 있다. 고대인들은 관습과 신념에 따라 그들의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순장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판왕은 세 영역(왕권, 군사권, 종교권)을 아우르는 권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원후 2~3세기 람바이예크 지역의 운명을 쥐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사망 당시 약 40세 정도의 나이였으며 건강한 신체에 균형잡힌 체형을 가졌으나 함께 묻힌 남성들에 비해 강한 근육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안에서 가까운 시판 유적의 주변 환경은 거의 모래사막과 같았는데 이는 엘니뇨 현상으로 수목이 말라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규모 거주지와 주변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모두 람바이예크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시판의 고고학적 기념물은 2개의 크고 침식된 벽돌로 만든 피라미드 구조물로 되어 있다. 이 거대한 건조물은 동에서 서로 3단을 이루고 있다. 첫 번째 피라미드의 길이는 140m, 높이는 최고 35m에 이른다. 두 번째 피라미드의 길이는 70m, 평균 높이는 약 70m에 이른다. 그리고 북쪽을 향하여 조그만 단이 설치되어 피라미드를 향하여 제사를 드리는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 조그만 단에서 4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시판의 왕, 제사장, 전사 등의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주변에서 황금 유물을 부장한 귀족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부장품이 고스란히 발견되어 이 시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무덤의 하층부에서는 정교한 공예품이 출토되었으며 이는 특권층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근처의 다른 조그만 방에서는 수백 점의 토기, 몇 점의 장신구, 음식물 등이 발견되었다. 더구나 그 위층에서 순장을 한 시판의 귀족은 순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장식품을 수반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이미 '수장사회(chiefdom)'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이 귀족의 무덤이 피라미드와 왕의 무덤의 입구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앞으로 발굴이 더 이루어져야 확실하겠지만 이미 '왕국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더 깊은 문화층을 발굴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 고대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세기적 발굴이라고 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들 일부는 근처의 유물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물들은 여기서 자동차로 1시간 걸리는 시판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발굴 책임자였던 알바 박물관장의 안내로 유물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 중요한 유물 41점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태양의 아들, 잉카' 전에 출품되었다. 시판박물관 유물은 지금까지 단독으로 해외 전시를 하였을 뿐 다른 박물관 유물과 함께 전시한 적이 없는데, '태양의 아들, 잉카' 전이 사상 최초로 페루의 다른 박물관에서 출품된 유물들과 함께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알바 관장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알바 관장은 또한 요즈음 새로이 많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슴 등이 그려져 있는 고분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며 사진자료들을 보여주었다. 그것들이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외에도 새로운 발굴을 통하여 많은 자료들이 출토되었다고 해 나는 그에게 한국에 와서 새로운 자료에 대한 특강을 해주기를 부탁하였다. 내년 1월에 개최될 예정인 알바 관장의 국립중앙박물관 특강이 페루의 고대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해주리라 기대한다.


神과 연결되는 길이 었을까, 풍요 꿈꾼 상징물이었을까

■ 나스카 평원의 불가사의한 그림들

시판왕이 이룩하였던 모체 문화(기원후 100~700)와 같은 시기에 페루 남부 해안지역의 나스카인들은 많은 선을 그린 그림을 남겼는데 농경, 달력, 천체에 관한 복잡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나스카 평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이 가장 집중적으로 발견된 곳은 후마나 평원과 산호세 지역이며 약 1,000㎢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선 그림은 여러 종류의 새(벌새, 콘도르 등), 80m 크기 원숭이, 46m 길이 거미, 200m 길이 도마뱀, 24m 길이의 물고기와 고양이, 꽃, 풀 등의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나선형, 끊어진 선, 방대한 길이의 선 등의 복잡한 기하학 무늬의 그림도 있다. 이들은 평원 지대에서 언덕과 강 유역까지 다양한 지형에 그려져 있었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폴 코속은 1927년 이 '나스카 라인'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그는 나스카 라인과 천문학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였다. 그는 방사형 그림의 중심이 해와 달의 출몰을 관측하는 지점이었고, 두 줄의 선은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방형과 삼각형 구역은 의례가 거행될 때 구성원들이 서 있던 영역이라고 주장하였다.

코속과 함께 나스카 라인을 발견했던 그의 제자인 독일인 여성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는 코속의 이론을 지속하여 펼쳐나갔다. 라이헤의 주장에 따르면 다양한 크기의 반복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상징적 기록 체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일부 선은 천체의 출현을 의미하며 또 다른 선이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를 의미한다고 밝혔으며 동물 모양은 별자리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요소가 농사력을 제작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스카의 선 그림은 천체와 역법과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선은 조상 숭배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성한 통로이며 산신과 연결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선과 모형이 물, 산에서 비롯된 풍요 기원제와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정들은 산신이 날씨를 조정한다고 믿는 안데스 사람들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스카인들은 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며 이와 관련한 제의를 지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의례가 거행되는 장소를 구획하기 위한 신도를 그리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삼각형이나 사각형은 수원(水源)을 의미하는 상징 모양이며 다양한 형태는 현재까지도 칠레 북부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잉카문명 발자취를 따라 걷는 페루 >

 

페루 수도 리마에서 동남쪽으로 580km 떨어진 해발 3400m의 안데스산맥에 위치해 있는 도시 쿠스코. 쿠스코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로 발길 닿는 곳마다 잉카문명을 볼 수 있어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코리칸차, 아라마스광장과, 삭사이와판, 뿌까뿌까라 등의 유적지를 둘러본다. 이중 코리칸차는 태양의 신전 또는 황금의 신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잉카제국의 최고 높은 신인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신전이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을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태양의 신전을 허물어 지금은 그 자취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잉카제국 전성기 시절에는 신전 입구와 지붕, 신전 안에 있는 지름 2m 규모의 태양이 모두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여행일정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마추픽추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잃어버린 도시', '고대 잉카문명 유적지' 등 마추픽추를 수식하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마추픽추는 산봉우리에 돌로 쌓은 성이 있는 곳으로 석축은 날카로운 칼날조차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 불리는 마추픽추에는 태양의 신전과 주신전 그리고 감옥 등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를 향해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길 위에서 우루밤바계곡과 장엄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바라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터진다.

이밖에도 일정 중에는 잉카제국 원주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우로스섬을 방문한다. 이 섬은 천혜의 호수라 불리는 티티카카호수위에 떠 있는 갈대섬으로, 이곳 주민들은 섬이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수시로 갈대를 엮고 있어 색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 잉카문명-모체 토기 >

   

죄인 참수·인신공양 등 당시 의례 모습을 표현

지난주에 안데스 고대문명의 신화와 관련해 하늘과 지상과 땅 속의 동물을 형상화한 신이 인간과 합쳐져 초자연적 존재로 표현되는 모습을 소개했다. 기원 전후 이러한 신화는 더욱 발전돼 보다 현실적인 대상으로 표현됐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안데스 산맥의 각 지역에서 국가의 단계로 이행하는 문명들이 발흥했다. 대표적인 문명이 페루 북부 해안과 평원에서 기원후 100~700년경 맹위를 떨쳤던 모체(Moche) 문명이다.

↑ 모체 최고의 신 아이아파엑이 죄인을 참수하는 모습을 새긴 토기. 페루 라파엘 라르코 에레라 박물관 소장.

 
 
모체 문화에서는 문양이 있는 토기와 사물을 본떠 만든 토기가 특히 많이 발견된다. 토기에 표현된 동물은 퓨마, 재규어, 여우, 매, 부엉이, 펠리컨, 악어새, 이구아나, 도마뱀, 바다표범, 사슴, 펭귄, 박쥐, 가재, 두꺼비, 달팽이, 가오리 등이다. 강낭콩, 제비콩, 옥수수, 땅콩, 감자 등 식물을 묘사한 것도 있는데 안데스의 모든 산물을 모아 놓은 듯하다. 그리고 경기, 춤, 사냥, 격투, 뗏목낚시, 과일 채집, 봉헌, 희생물, 체벌, 매장, 성교와 같은 다양한 활동과 의식도 다루고 있다. 특히 모체 토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전쟁포로를 신에게 바쳤던 인신공양의 의식이 담긴 토기다.

 
페루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러한 모체 상형토기는 수만 점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의례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전문 도공이 틀을 만들고 대량으로 찍어내 유통시켰다. 이는 지배세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교본으로, 토기에 그 지침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상형토기는 문자와 기록이 없었던 모체의 삶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영감을 준다. 우리나라의 신라 토우에서 보이는 세속적인 모습보다도 더욱더 현실감 있고 해학적이다. 역사 기록에 못지않은 불멸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