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의 정수 '치첸이트사'
수수께끼 같은 과학 남기고 그들은 어디로…
태양은 내일을 열기 위해 날마다 밤과 싸워야 했다. 지친 태양에게 힘을 주기 위해선
사람의 심장과 피를 계속해 바쳐야 했다. 태양을 향한 절대 숭배, 그것이 만들어 낸 마야의 슬픈 운명이었다.
유카탄반도 전역에 세력을 뻗치고 찬란한 문명을 남겼던 마야. 그때 사람들은 태양과
가장 가깝게 지내며 독수리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바퀴도 없고 철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태양을 가장 정확히 읽고 기억했던 사람들이었다.
↑ 폭탁폭 경기 제의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를 전시했던 제단(왼쪽부터). 인류 최초의 팀 대항 구기였던 폭탁폭 경기장. 엘 카스티요 옆에 있는 전사의 신전.
↑ 마야의 천문학과 기하학의 정수인 체첸이트사의 중심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마야의 전설을 뒤로하고 힘껏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마야인들은 천문학과 기하학에 뛰어난 지식을 지녀 태양이 뜨고 지는, 미세한 변화를 정확히 계산해 냈다. 260일을 기준으로 하는 종교력과 365일을 기본으로 하는 태양력을 동시에 사용했다.
지금까지의 역법 중 가장 정확했다는 게 마야의 태양력이다. 마야의 달력을 근거로 2012년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는 영화 '2012'가 최근 개봉하기도 했다.
마야의 놀라운 문명은 유카탄반도 북쪽에 자리 잡은 치첸이트사(Chichen Itz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은 물론, 2007년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마야의 대표 유적이다.
이른 새벽 리비에라 마야에서 출발한 버스는 거의 정오가 가까워서야 치첸이트사에 도착했다. 수많은 이들이 줄지어 유적으로 향했다. 마야의 숭배객들에 끼어 함께 성스러운 유적을 맞으러 갔다.
마야의 지도자들은 동쪽 지평선을 눈 여겨 봤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이 농사를 시작하거나 수확하기에 최적의 시점이란 것을 간파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자연의 리듬을 기록했고 그 지식들은 통치의 밑바탕이 됐다. 자연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왕에게 하층민들은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쿠클칸의 신전'으로 불리는 '엘 카스티요(El Castillo)'는 그런 마야 천문학과 기하학의 정수다. 마야인들은 이곳에서 뱀의 형상인 쿠쿨칸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250m.
턱을 떨굴 정도의 거대한 규모가 아니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곳에 숨겨진 과학을 파헤치다 보면 피라미드의 무게는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게 다가온다.
피라미드의 4개 사면마다 가운데에는 계단이 있다. 한 면의 계단 수는 90개다. 총 계단 수에 꼭대기 제단에 있는 상징물 5개를 더하면 365란 수가 완성된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 기준에서 17도 북동쪽으로 살짝 틀어져 들어앉았다. 매년 춘분(3월 20, 21일)이나 추분(9월 20, 21일) 때 북쪽 사면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북쪽 사면 가운데의 계단 난간에 피라미드 모서리를 통과한 빛이 마치 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오후 4시 20분 맨 위부터 한 단씩 뱀이 나타나기 시작해 5시 50분에 맨 밑에까지 뱀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고 다시 아래서부터 지워지기 시작한 뱀은 5분 만에 하늘로 오르며 사라진다. 뱀 형상의 신 쿠클칸을 믿는 백성들이 신의 강림을 목도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컴퓨터는커녕 쇠로 된 연장도 없던 시절, 돌도끼로 다듬고 사람 손으로 들어 올려 만든 피라미드가 빚어낸 마법이다.
피라미드 앞에선 박수 소리의 메아리도 기이하다. 다른 곳에선 박수 소리가 공명하지 않는데 유독 계단의 정면에서 친 박수는 메아리 쳐 되돌아온다. 계단을 타고 오른 소리가 꼭대기 제단에서 메아리 쳐 되돌아 오는데 딱 새소리를 닮았다.
가이드는 마야의 왕들이 그 깃털로 머리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던 귀하고 예쁜 새 쿠에찰(quetzal)의 소리라고 했다. 공명까지도 계산된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위에서 이야기를 하면 아래에서 아주 잘 들리고 아래서 이야기한 소리는 위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피라미드 건너편에는 웅장한 규모의 폭탁폭 경기장이 있다. 편을 갈라 공으로 경기를 하는 마야의 게임 폭탁폭이 벌어지던 곳이다. 아마도 폭탁폭은 인류 최초의 팀 대항 구기 종목이었을 것이다.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고무로 만든 공을 가지고 손이 아닌 엉덩이 허벅지 어깨 등을 이용해 주고받으며 경기장 가운데 벽에 높이 설치된 동그란 림 안에 집어넣는 게임이다. 당시에 폭탁폭은 단순한 스포츠를 떠나 엄숙한 종교 의식이었다. 경기 뒤엔 언제나 승자나 패자가 목을 내놓아야 했다.
가이드는 "승자가 죽었는지, 패자가 죽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이긴 팀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후 세계를 믿는 마야인들에게 신에게 목숨을 바치는 것은 큰 영광이었기 때문이란다.
경기장 바로 옆 나지막한 제단의 벽면엔 온통 해골이 새겨져 있다. 당시 폭탁폭 경기 제의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를 전시했던 제단이다. 수많은 돌기둥이 인상적인 전사의 신전은 피라미드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신은 그동안 바친 사람의 피와 심장만으로 성이 차?않은 걸까. 아니면 너무 과식을 한 걸까. 후기 마야 시대 가장 큰 세력을 구축했던 치첸이트사는 1500년께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쇠멸했다. 유적을 그대로 놔둔 채 이곳을 떠나 버린 마야인들. 왜 그랬을까.
가이드는 "아마도 오랜 가뭄에 수확량이 줄자 하층민이 더 이상 세 부담을 못 참고 반란을 일으켜 귀족 계급을 다 죽인 뒤 이곳을 떠난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고 했다. 마야의 눈부신 천체 기하의 지식이 전승되지 않고 함께 사라진 게 그 이유일 것이라며….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신전의 벽면으로 다가섰다. 조심스레 유적을 쓰다듬었고
지금까지의 역법 중 가장 정확했다는 게 마야의 태양력이다. 마야의 달력을 근거로 2012년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는 영화 '2012'가 최근 개봉하기도 했다.
마야의 놀라운 문명은 유카탄반도 북쪽에 자리 잡은 치첸이트사(Chichen Itz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은 물론, 2007년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마야의 대표 유적이다.
이른 새벽 리비에라 마야에서 출발한 버스는 거의 정오가 가까워서야 치첸이트사에 도착했다. 수많은 이들이 줄지어 유적으로 향했다. 마야의 숭배객들에 끼어 함께 성스러운 유적을 맞으러 갔다.
마야의 지도자들은 동쪽 지평선을 눈 여겨 봤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이 농사를 시작하거나 수확하기에 최적의 시점이란 것을 간파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자연의 리듬을 기록했고 그 지식들은 통치의 밑바탕이 됐다. 자연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왕에게 하층민들은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쿠클칸의 신전'으로 불리는 '엘 카스티요(El Castillo)'는 그런 마야 천문학과 기하학의 정수다. 마야인들은 이곳에서 뱀의 형상인 쿠쿨칸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250m.
턱을 떨굴 정도의 거대한 규모가 아니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곳에 숨겨진 과학을 파헤치다 보면 피라미드의 무게는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게 다가온다.
피라미드의 4개 사면마다 가운데에는 계단이 있다. 한 면의 계단 수는 90개다. 총 계단 수에 꼭대기 제단에 있는 상징물 5개를 더하면 365란 수가 완성된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 기준에서 17도 북동쪽으로 살짝 틀어져 들어앉았다. 매년 춘분(3월 20, 21일)이나 추분(9월 20, 21일) 때 북쪽 사면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북쪽 사면 가운데의 계단 난간에 피라미드 모서리를 통과한 빛이 마치 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오후 4시 20분 맨 위부터 한 단씩 뱀이 나타나기 시작해 5시 50분에 맨 밑에까지 뱀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고 다시 아래서부터 지워지기 시작한 뱀은 5분 만에 하늘로 오르며 사라진다. 뱀 형상의 신 쿠클칸을 믿는 백성들이 신의 강림을 목도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컴퓨터는커녕 쇠로 된 연장도 없던 시절, 돌도끼로 다듬고 사람 손으로 들어 올려 만든 피라미드가 빚어낸 마법이다.
피라미드 앞에선 박수 소리의 메아리도 기이하다. 다른 곳에선 박수 소리가 공명하지 않는데 유독 계단의 정면에서 친 박수는 메아리 쳐 되돌아온다. 계단을 타고 오른 소리가 꼭대기 제단에서 메아리 쳐 되돌아 오는데 딱 새소리를 닮았다.
가이드는 마야의 왕들이 그 깃털로 머리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던 귀하고 예쁜 새 쿠에찰(quetzal)의 소리라고 했다. 공명까지도 계산된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위에서 이야기를 하면 아래에서 아주 잘 들리고 아래서 이야기한 소리는 위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피라미드 건너편에는 웅장한 규모의 폭탁폭 경기장이 있다. 편을 갈라 공으로 경기를 하는 마야의 게임 폭탁폭이 벌어지던 곳이다. 아마도 폭탁폭은 인류 최초의 팀 대항 구기 종목이었을 것이다.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고무로 만든 공을 가지고 손이 아닌 엉덩이 허벅지 어깨 등을 이용해 주고받으며 경기장 가운데 벽에 높이 설치된 동그란 림 안에 집어넣는 게임이다. 당시에 폭탁폭은 단순한 스포츠를 떠나 엄숙한 종교 의식이었다. 경기 뒤엔 언제나 승자나 패자가 목을 내놓아야 했다.
가이드는 "승자가 죽었는지, 패자가 죽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이긴 팀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후 세계를 믿는 마야인들에게 신에게 목숨을 바치는 것은 큰 영광이었기 때문이란다.
경기장 바로 옆 나지막한 제단의 벽면엔 온통 해골이 새겨져 있다. 당시 폭탁폭 경기 제의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를 전시했던 제단이다. 수많은 돌기둥이 인상적인 전사의 신전은 피라미드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신은 그동안 바친 사람의 피와 심장만으로 성이 차?않은 걸까. 아니면 너무 과식을 한 걸까. 후기 마야 시대 가장 큰 세력을 구축했던 치첸이트사는 1500년께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쇠멸했다. 유적을 그대로 놔둔 채 이곳을 떠나 버린 마야인들. 왜 그랬을까.
가이드는 "아마도 오랜 가뭄에 수확량이 줄자 하층민이 더 이상 세 부담을 못 참고 반란을 일으켜 귀족 계급을 다 죽인 뒤 이곳을 떠난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고 했다. 마야의 눈부신 천체 기하의 지식이 전승되지 않고 함께 사라진 게 그 이유일 것이라며….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신전의 벽면으로 다가섰다. 조심스레 유적을 쓰다듬었고
미세한 바스러짐을 느꼈다. 그'멸(滅)'의 느낌.
< 일상생활 그려진 마야문명 피라미드 발견 >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마야문명의 일상생활을 연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발견돼 멕시코 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멕시코 동남부 캄페체 주(州)에서 그림이 그려진 피라미드가 발견됐다. 옛 마야도시로 알려진 칼라크물에서 발견된 이 피라미드는 높이 11m, 3층 구조로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피라미드와 달리 벽돌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총 46편의 그림은 모두 컬러로 마야문명 당시 일상생활 모습을 담고 있다. 음식을 만들거나 나눠주는 모습, 그릇이나 짐을 지고 이동하는 모습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일부 그림에는 상형문자로 간단한 설명까지 달려 있다.
그림에는 남녀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등장한다. 고고학계는 "옷에 뚜렷하게 차이가 있어 당시 신분이나 계급을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며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발굴된 마야문명 때의 기념비나 유적, 토기, 보석류 등이 대개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정보를 줬을 뿐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에 대해선 사실상 연구자료가 전무했다."면서 "이번 피라미드 발견으로 마야문명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가 활기차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피라미드가 발견된 곳은 약 68개 건물이 옹기종기 몰려 있었던 도시 중심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견된 피라미드는 발견된 건축물 중 가장 높은 것이다.
함께 발굴된 토기의 양식으로 추정할 때 피라미드가 그림으로 그려진 건 620-70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에는 남녀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등장한다. 고고학계는 "옷에 뚜렷하게 차이가 있어 당시 신분이나 계급을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며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발굴된 마야문명 때의 기념비나 유적, 토기, 보석류 등이 대개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정보를 줬을 뿐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에 대해선 사실상 연구자료가 전무했다."면서 "이번 피라미드 발견으로 마야문명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가 활기차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피라미드가 발견된 곳은 약 68개 건물이 옹기종기 몰려 있었던 도시 중심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견된 피라미드는 발견된 건축물 중 가장 높은 것이다.
함께 발굴된 토기의 양식으로 추정할 때 피라미드가 그림으로 그려진 건 620-70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아메리카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대 문화유산 간직한 페루-잉카제국 > (0) | 2009.11.30 |
---|---|
< 멕시코 인디언 유골 12구 107년만에 매장 > (0) | 2009.11.18 |
< 멕시코 국경 담벼락에 십자가 5천개 > (0) | 2009.11.01 |
< 세계 최장수 현역 군함 컨스티튜션함 > (0) | 2009.10.23 |
< 아르헨 軍政 인권 탄압자 처벌 현황 발표 > (0) | 2009.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