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원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 추정
불법자금 의혹을 받고 있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투신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노 의원이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모 아파트 1층 현관 앞에서 숨진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유서가 발견됐으며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자인 경비원 김모씨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날이라 일하다가 '퍽' 소리가 나서 뒤쪽을 보니 와이셔츠에 바지 차림의 남자가 엎드려 있는 채로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 인력 등 30여명이 투입됐다. 국회 관계자들도 현장을 찾아 사고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시신 주변에는 천막과 폴리스라인이 처졌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주민들도 10여명 몰려왔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경위를 파악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주변 CCTV(폐쇄회로화면)를 확보하는 등 사고 직전까지 노 의원의 행적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된 점 등을 미뤄볼 때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같은 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단 둘뿐인 3선 의원이다. 제20대 총선에서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56년 부산 태생인 노 의원은 경기고 재학 시절부터 유신 반대 운동 등에 가담했다. 고려대 재학 중에도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으며, 1980년대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혐의 등으로 오랫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경찰 당국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1982년에는 각종 시위를 주도·불온문서를 배포했다는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의 중앙위원을 맡았다. 격주간지 ‘사회주의자’ 편집위원으로 인민노련 활동을 하던 중 1989년 체포되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1992년부터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 몸담으며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을 역임했다. 이 당시 많은 빚을 지게 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노 의원의 활약에 민주노동당은 비례당선권인 5~6번을 뛰어넘었고, 비례대표 순번 8번이었던 그 역시 당선됐다.
당선 이후엔 유명 진보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당내 갈등이 심화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10년 서울시장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나섰다.
2013년에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의 검사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19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서 재선에 성공했다.
노회찬 의원에 대해 대중의 일반적 평가는 호의적인 편이다.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대중주의적 정치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도권 정치에 연착륙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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