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 판사 출신 독립운동가 박상진 >

엑칼쌤 2019. 8. 16. 08:56

판사 출신 독립운동가 박상진


박 의사는 울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졸업 후 판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

임용을 거절했다.


박 의사는 판사 취임을 거부하고 1911년 만주 지역 망명자들을 만나러 갔다. 만주에는 허위의 형인 허겸을 비롯해 이상룡과 김동삼, 손일민, 김대락 등이 망명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영남 지역 유학자 출신으로 해외 독립운동 기지 설립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인물이다.


귀국한 뒤에는 해외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1915년 비밀 결사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해 활동했다. 계몽 운동가 중심의 이 단체는 곧 채기중 등이 결성한 옛 의병 운동가 중심의 풍기광복단과 연합해 대한광복회를 조직했다. 박 의사는 이 광복회의 총사령을 맡았다.


광복회 강령은 부호에게서 군자금을 반강제적으로 기부 받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고,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위한 학교를 세워 운영하며, 해외에서 무기를 구입해 일본인 고관이나 한국인 친일 인물을 수시로 처단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던 중 협조하지 않는 칠곡의 부호 장승원(장직상·장택상의 아버지) 등의 부호들과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했다. 1918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만주에 있던 대한광복회 부사령관 김좌진 장군은 박 의사를 구하기 위해 파옥 계획을 세웠으나 시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변호사 선임 등을 거부하고 대구 형무소에서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