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

< 이란, 중동 지역이지만 非아랍 국가 >

엑칼쌤 2020. 1. 8. 19:36

이란, 중동 지역이지만 非아랍 국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 특수부대 쿠드스의 사령관으로 '다크 나이트'로 불리던 가셈 솔레이마니 소장(이란군 최고계급)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피살된 여파 때문이다. 이란은 중동에 있는 이슬람국가다. 하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한다. '중동=이슬람=아랍'이란 통념이 팽배해서다. 



* 이란의 역사와 종교

수니파와 시아파 분포도 초록이 시아, 파랑이 수니.


        

이 셋은 범주가 다르다. 중동은 지역, 이슬람은 종교, 아랍은 민족이다. 중동(Middle East)은 유럽인이 붙인 지역명이다. 극동(Far East)과 달리 유럽과 인접한 아시아 국가가 모인 지역을 뜻한다. 처음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로 구성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확장됐다. 지금은 아프리카 북부와 북서부 해안을 접한 나라 모두와 소말리아까지 포함할 때가 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까지 중앙아시아국가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지역 명을 쓸 때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로 구별해 쓰는 것이 좋다. 


이를 중동이란 모호한 지역개념으로 뭉뚱그리는 이유엔 이들 나라가 이슬람국가라는 요소가 작동한다. 하지만 전통적 중동국가 중에서도 비이슬람 국가가 있으니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교국가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레바논은 국민의 40%가 기독교를 믿는다. 비중동 이슬람국도 많다. 세계 최대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 있다. 


아랍은 민족개념이다. 인종적으로는 서남아시아의 셈좀과 북아프리카의 햄족으로 구성되는 사람들 중에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족을 자처하는 문화적으로 확장된 민족개념이다. 그래서 모호하다. 보통 아랍연맹에 가입한 22개 이슬람국가를 아랍국으로 간주한다.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일대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 이슬람국가 중에서 아랍연맹에 들지 않은 큰 나라가 둘이나 있다. 터키와 이란이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세운 투르크족이 대다수인 터키는 8000만 명의 인구와 7853만ha의 영토를 자랑한다. 이란어를 쓰고 이란민족이 대다수를 구성하는 이란은 서남아시아 최대 인구(8300만 명)와 두 번째 큰 영토(1억7451만ha)를 자랑한다. 최대 영토국은 사우디아라비아(2억1500만ha)이지만 인구가 2800만 명밖에 안된다. 사우디가 아랍의 맹주는 될 수 있어도 중동이나 이슬람의 맹주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 유럽과 친연성이 가장 큰 이슬람국

사실 터키와 이란은 아랍에 비해 유럽에 더 가깝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럽에 가까운데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 케말 파샤(1881~1938) 이후 유럽화(세속화)에 주력해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노골화하기 전인 2010년까지는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왔다.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면 이란은 유럽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서양 대다수 민족과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그래서 어순도 서양언어와 같은 '주어+목적어+술어'로 이뤄진다. 이란이라는 국호 자체가 이들 어족의 공통조상인 아리안을 뜻한다. 터키의 투르크족이 13세기말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족으로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계 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이런 차이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럼에도 서양국가가 이란을 경원시하는 것은 이란인들이 세운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으로부터 그리스문명을 지켜낸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유럽문명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동쪽에 위치했기에 전제적 아시아 문명의 대명사가 된 탓이다. 


이란은 가장 오래된 문명을 세운 민족의 하나다. 기원전 6세기 세워진 페르시아 제국 이전에 메디아 왕조(기원전 728~550)가 있었고 로마제국에 맞섰던 파르티아(기원전 247~기원후 224)와 사산조 페르시아(226~651)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페르시아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기원전 7세기 자라투스트라(그리스어로 조로아스터)가 세운 이 종교는 유일신(아후라 마즈다) 신앙과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인류에게 각인시키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게 1000년 가까이 서남아시아를 지배하던 이란민족은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의 등장과 함께 아랍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그를 계승한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651년 이란 전역을 정복한 이후 1000년 가까이 비(非)이란계 이슬람제국이나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이란인은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된다.

* 시아파 종주국


이슬람은 크게 3개 종파로 나뉜다. 전체 무슬림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수니(Sunni)와 15%안팎의 시아(Shia) 그리고 5% 미만의 수피(Sufi)다.  

        

수니와 시아는 무함마드의 진정한 후계자 내지 대리자가 누구냐를 두고 갈린다. 시아는 아들이 없었던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4대 칼리프인 알리(600?∼661)와 그 혈통에게만 정통성이 있다고 믿는다.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인 '시아트 알리'의 줄임말이 시아다. 이에 반해 수니는 무함마드 사후 5명의 칼리프와 그 후계자들에게 모두 정통성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순나(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을 뜻하는 '수니'를 자처한다. 마지막으로 수피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신과 합일을 모색하는 영성주의자다. 


이란은 시아파다. 처음부터 시아파였던 건 아니었다. 사파비 왕조(1501년~1736년)가 들어서기 전까진 수니파가 다수였다. 사파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1세(1487~1524)는 1507년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자 이란 전역을 평정하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웠다. 


그는 이를 위해 이란민족주의를 적극 활용했다. 그 자신은 쿠르드계 아니면 투르크계였음에도 스스로 이란계라고 선포했고 페르시아어로 왕의 칭호인 '샤'를 부활시켰다. 그전까지 이슬람제국에선 칼리프나 에미르, 술탄 같은 아랍어 칭호를 사용한 것에 대한 차별화 전략이었다. 또 사파비 왕조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이후 950년 만에 재건된 이란제국이란 점도 앞세웠다.

7세기 이후 이란인들은 아랍제국과 몽골제국에서 유능한 행정 관료로 각광받았지만 독자적 국가가 없어 설움을 받아왔다는 점을 파고들어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한 것이다. 사파비 왕조는 근대 이란의 원형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 사파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1세는 자신이 알리의 혈통을 계승한 7대 이맘 무사 알 카짐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열혈 시아였다. 그로 인해 시아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왕조 시절을 거치며 이란인의 95%가 시아파로 개종했고 그 동쪽 영토의 상당수가 사파비 왕국에 편입된 이라크 역시 시아파 다수국가(65%)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