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북한 인민군 건군 과정
해방 이후 북한으로 귀국한 정치세력들은 건국(建國)·건당(建黨)과 함께 건군(建軍)을 독립국가 건설의 3대 과업으로 명시하고 군대 창설에 힘을 기울였다. 해방 이후 입북한 3대 정치세력은 김일성을 주축으로 한 동북항일연군 출신, 무정을 비롯한 조선의용군 출신, 리동화로 대표되는 소련의 고려인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군대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는 경험이 있었다. 북한에 들어온 이들에겐 군대가 필요했다. 친일파 등 식민잔재의 청산과 사회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선 무력기반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1947년 5월 집단군총사령부가 창립되면서 창군이 본격화됐다. 군사지휘기관을 확장했고 2개 보병사단과 1개 보병여단을 확편했다. 또한 항공부대, 탱크부대 등 병종부대 창설 준비에 착수했다. 새 군대의 골격은 빨치산 부대 출신이었다.
한반도 정세가 단독정부 수립으로 선회되자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공식 창설된다. 이날 인민군이 창설된 이유는 이 날이 북조선인민위원회 창립 제2주년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9월 9일 북한정부가 수립되자 본격적인 확군이 이뤄졌다. 1948년 12월 북한·중국·소련이 합의한 확군계획의 핵심은 기존의 6개 보병사단을 돌격사단으로 재편하고, 2개의 전차사단을 새로 편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8개 보병사단과 8개 예비사단을 새로 만들어 보병부대의 전력을 총 22개 사단으로 완편하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조선인 부대원 약 2만~2만5000명을 입북시키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조선인 부대의 입북은 1947년 7월부터 실현됐다. 2개 사단이 입북해 인민군으로 전환됐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인민해방군에 있던 나머지 조선인 병사들이 입북했다. 이로써 인민군은 공격형 부대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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