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성리학’ 인간 남 명을 좇아
남명 조 식(1501~1572)에 관한 교양총서 여섯 권(경인문화사 펴냄)이 나왔다. 경상대 남명학연구소(소장 허권수)에서 낸 < 나의 남명학 읽기 > (최석기) < 남명의 인간관계 > (윤호진) < 남명의 한시선 > (허권수) < 남명의 산문선 > (허권수) < 남명과 지리산 > (최석기) < 남명문학의 현장 > (정우락) 등이 그것.
퇴계와 동갑인 남명은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후학교육으로 평생을 보냈다. 퇴계가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집대성했다면 남명은 체득과 실천을 강조했다. 그의 문하에서 곽재우 정인홍 등 현실참여적 인물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남명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광해군 북인정권이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면서 남명일파도 역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재야에서 자신의 도덕적 수양에 그치지 않고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처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556년 남명이 단성현감을 고사하면서 올린 상소문은 조정과 관료의 부패, 왜적방비의 허술함 등을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소 총무부장인 최석기 교수(한문학·경상대)는 "남명의 저작은 퇴계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짧은 문장에 담은 뜻이 크고 깊다"면서 "양심적으로 선비정신을 지켜내는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앞으로 20~30권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 명은 현대인한테는 어려운 성리학자인데다 경상도 지리산 일대에 은거했던 재야학자. 학계에서는 16세기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룬 대유학자로 재평가받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인물이다. 남명학연구소는 1990년 설립돼 30여회 학술대회, 학술지 < 남명학연구 > 22권 발간 등을 해오다가 일반인들이 남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양총서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퇴계와 동갑인 남명은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후학교육으로 평생을 보냈다. 퇴계가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집대성했다면 남명은 체득과 실천을 강조했다. 그의 문하에서 곽재우 정인홍 등 현실참여적 인물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남명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광해군 북인정권이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면서 남명일파도 역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재야에서 자신의 도덕적 수양에 그치지 않고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처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556년 남명이 단성현감을 고사하면서 올린 상소문은 조정과 관료의 부패, 왜적방비의 허술함 등을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소 총무부장인 최석기 교수(한문학·경상대)는 "남명의 저작은 퇴계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짧은 문장에 담은 뜻이 크고 깊다"면서 "양심적으로 선비정신을 지켜내는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앞으로 20~30권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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