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 크메르왕국의 앙코르 유적 >

엑칼쌤 2010. 1. 25. 08:47

크메르왕국의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 밀림지역에서 발굴된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 유적은 인류유산에 한 획을 긋는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미얀마 바간의 수천 개의 불교사원군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최대 사원 건축물로 꼽히는 앙코르 유적은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마치 야외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이 거대한 유적지는 한마디로 인간의 솜씨로 일궈낸 거대한 예술품이다. 802년에서부터 1220년 사이에 크메르족에 의해 지어진 앙코르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다양한 인류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 크메르 왕족은 무슨 이유로 울창한 숲 지대에 거대한 사원을 짓고 살았을까?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문헌적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큰 유적을 섬세한 건축기술을 바탕으로 예술로 승화시킨 크메르 왕족은 어찌된 영문인지 앙코르 유적에 대해 기록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은 앙코르 유적을 걷고 있노라면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큰 화두가 된다.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왜 이곳을 크메르 왕국의 수도로 삼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아주 분분하다. 어떤 학자는 앙코르 유적지가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땅이 왕국의 수도로서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에 수도를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앙코르 사원군의 지리학적 위치와 사원들의 배치는 고대의 천문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세워진 제국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앙코르 사원들의 천문학적 위치는 기원전 1만500년경 춘분(春分) 때 용의 별자리를 그대로 반영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천문학적 배열을 앙코르 건축에 적용한 이유는 지구와 우주의 행성들과의 조화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정통파 고고학자들은 앙코르의 유적지를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왕들이 신과 자신들을 위해 건축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원은 왕을 경배하기보다는 신에게 예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틀림없다. 우주 행성들의 나란한 배치와 커다란 3차원의 얀트라(명상할 때 쓰는 도형) 모양의 구조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종교예술로 장식된 앙코르의 사원들은 해탈하고 싶은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이처럼 학자에 따라 앙코르 유적의 탄생 배경은 저마다 달리한다. 그렇게 때문에 21세기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곳은 최첨단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앙코르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도시가 먼 옛날에 신이 만든 도시라고까지 말했다. 몇 세기의 세월을 다시 보내며 이런 이야기들은 전설이 되었고 순례자들은 이 신비로운 신의 도시를 향해 순례여행을 시작했다. 소수의 유럽 출신 탐험가들이 앙코르의 유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정글 속에 버려진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골동품 애호가들 사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사암으로 축성된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61년 프랑스 출신의 박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 탐사단을 이끌고 영화 '인디아나존스'에서 '최후의 성배'를 찾듯이 황폐한 밀림에서 크메르 왕국이 세운 전설의 도시 앙코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908년에 이 고대도시에 매료된 프랑스인들이 기금을 조성해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복구 작업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군부세력이 고고학자들을 유적 근처에 살지 못하도록 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크메르 왕족이 500여 년 동안 수도로 삼았던 앙코르는 태국 아유타야에 정복되기까지 찬란한 문화의 꽃이 자랐던 곳이다. 비록 밀림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갇히고, 자연에 의해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고 폐허가 됐지만 앙코르에 스민 크메르인들의 삶의 지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