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

< DJ, 당선 48시간만에 의원직을 뺏긴 이유는? >

엑칼쌤 2010. 12. 3. 11:39

DJ, 당선 48시간만에 의원직을 뺏긴 이유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DJ)도 정치에 첫 입문을 했을 때는 숱한 좌절과 시련을 맛봐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6.25 전쟁과 부산정치파동을 겪으면서 올바른 정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정계 진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번 연속으로 떨어졌고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야 처음으로 민의원 당선이라는 기쁨을 맛봤다.

 

 

의원 당선의 기쁨을 맛본 것은 잠시. 당선 3일만에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 4·19 혁명 이후 민주화의 기대 속에 출범했던 제5대 국회를 해산시켰다. 이 때문에 5대 국회는 역대 최단기간인 9개월 18일만에 종료됐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회를 해산한 후 1963년 12월16일 군정이 종식될 때까지 2년7개월간 국회 고유의 기능인 입법권을 행사했고 제출된 의안 1593건을 100% 처리한 기록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5·16 때문에 헌정 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지낸 국회의원으로 기록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당선 3일만에 임기를 끝낸 당선자들은 정인소·김사만·김성환·김종길씨다.

이들 당선자는 의원 등록을 못했고 당연히 금배지도 받지 못했다. 기록상으로 이들은 1961년 5월13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재임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14일 아침 당선이 선포되고 16일 아침 국회가 해산됐으니 사실상 '48시간짜리' 의원이었던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은 훗날 "당선 인사를 위해 선거구인 인제를 이틀 동안 순방한 후 16일 아침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 지프차에 휘발유를 넣다가 라디오 방송으로 5·16 소식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회가 해산된 후 평생의 반려자인 이희호 여사를 만났고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함께 48시간짜리 임기를 지냈던 다른 4명의 의원들은 재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6대에 이어 7대, 8대, 13대, 14대에서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화려한 의정활동을 펼쳤고 그 기간 동안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19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후보 지원유세차량를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테러를 당했다. 1973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납치당해 호텔에서 토막살해를 당할 위기를 넘겼고 곧바로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 극적으로 생환했다. 1980년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군사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그는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하면 입이 나오고 '사'하면 입이 찢어진다. 입이 나오면 내가 살고 입이 찢어지면 내가 죽는다."

숱한 좌절과 시련,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김 전 대통령은 '인동초'(忍冬草)로 불린다. 인동초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