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켜켜이 쌓인 역사의 울림-1일차 >

엑칼쌤 2021. 8. 18. 06:20

켜켜이 쌓인 역사의 울림-1일차 

 

1강. 최제우, 동학을 창도하다.

 

동학의 창도자-최제우(1860년 창시-1864년 순교)

-시천주 ; 사람이 곧 하늘이니 천주님을 받들듯이 하라

-<동경대전>, <용담유사> 지음

 

동학의 교단을 정비-최시형

-사인여천 :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

-<동경대전>, <용담유사> 출간(최시형이 이름 붙임)

 

3대 교주-손병희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사위 방정환

 

2강.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꿈꾼 세상-1

 

<대전회통>에서의 법규

-난이 지역 경계를 벗어나면 역모죄로 처벌됨.

 

황토현 전투-홍계훈 부대와 장성 황룡촌 전투

 

장태(대나무로 엮은 닭을 키우는 닭집)를 총알을 막는 방패 삼아 싸움

 

 

3강.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이 꿈꾼 세상-2

 

난이 지역 경계를 벗어나면 역모죄로 처벌됨 <대전회통>

 

1. 1차 봉기

 

4. 27 전주성 서문 밖 용머리 고개에 도착

       농민군의 일부를 상인으로 변장시켜 성 안으로 들여보냄.

       안과 밖에서 동시 공격

-전라감영군의 대부분이 황토현 전투에서 살상됨.

-남은 감영군은 경군에 편입되어 농민군을 쫓아다님

-전라감사는 농민군이 공격해오자 공주로 달아남.  

-전주성 점령(전주화약 체결)

 

2. 2차 봉기

 

1) 당시 지도부 3인의 입장

 

농민군을 해산하지 말고 재봉기하자는 대원군의 밀지가 도착함.

 

전봉준(40세)-집강소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사태를 지켜보자.

김개남(42세)-한 번 흩어지면 군사를 다시 모을 수 없으니 재봉기해야 한다.

손화중(34세)-농민군을 해산하고 훗날을 도모하자.

 

1차 공주 전투에서 농민군 1만 여 병 / 관군과 일본군 2.700여 명

-일본군의 공격으로 3천 여 명 남음

 

계속 패하여 남으로 후퇴--마지막 태인에서 패배-농민군 해산

-순창 피노리에서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잡힘

 

1895. 1. 24--26명 동학 농민군의 대둔산 항쟁

-기록에서 전하는 농민군의 마지막 저항

 

전봉준, 손화중-같이 처형됨

김개남-재판 없이 처형당함

 

4강. 최고령 의병장 면암 최익현

 

무성서원(정읍)-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곳

경기도 포천 출생

5년 동안 이항로에게서 가르침을 받음

스승이 지어준 호 면암-암자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열심히 공부해라

1873년 대원군의 정치 관여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탐라에 위리안치 됨.

 

* 그가 올린 상소문

 

1. 경복궁 중건 등 비판(1868)

 

2.서원 철폐가 능사가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1873)

/ 대원군이 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상소함.

  당시 고종의 나이 22세였음.

  그 뒤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됨

  그러나 최익현은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됨(1년 반 뒤 유배에서 풀려남)

 

3. '도끼를 지니고 궐 앞에 엎드려 화의를 배척'하는 소를 올림(1876)

 / 개항에 반대함

   1월-흑산도로 다시 유배 가게 됨

   2월-강화도 조약 체결됨

 

4. '역적을 토벌하고 의복제도를 복구'하자는 소를 올림(1895)

 / 갑오개혁에 반대함

 

5. '을사늑약 체결에 나선 5명의 대신을 처벌'하자는 소를 올림(1905)

3년 간 쓰시마 섬 감금형을 선고 받음

-1906년 11월 사망

 

/ 임병찬

 -최익현과 함께 쓰시마 섬으로 유배 감

 -고종의 밀명을 받음 ; '독립의군부'를 만들어 국권을 회복해 주기를 바란다'

 

5강. 3·1운동의 민족 대표 박준승과 전북의 독립운동가들

 

20c 초 익산-'수 줍은 속살과 같다'하여 '이리'라고 칭함

전라북도에서 제일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

-전북 군산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

 

6강.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김병로

 

1. 변론 사건

 

옥구 농민 항쟁-1927년 옥구 이엽사 농장에서 일어난 소작 쟁의 농민 항쟁

원산 총 파업-1929년 영국인이 경영하는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지배인이 조선 노동자들을 구타한 사건 발생

 

해방 이후 초대 대법원장 임명

-다리에 큰 병이 들어서 다리 절단-의족을 끼고 복귀함

-1957년 퇴임함.

 

7강. 민족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

 

1899년 군산항 5번째로 개항

1908년 최초의 포장도로인 전군도로 개통

1912년 군산선 철도 개통

 

이인식

-20세에 물려받은 땅(군산 임피)을 처분해 임시정부에 헌납(현 200억원 정도)

-해방이 되어서도 만주에서 중학교의 교장이 되어 환국을 미룸

-병으로 귀국하게 됨

-임피중학교 교장으로 취임

 

백산 안희제 / 백산상회

-고향의 전답을 팔아 부산에 백산상회 설립

  / 국내와 소통할 연락망, 독립운동 자금 모금

-1930년대에는 발해 동경성 주변에 발해 농장을 만들고 발해보통학교를 설립

 

간송 전형필

-오경석의 아들인 오세창을 통해 영향을 받아 문화재 수집에 주력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구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