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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영산 '백두산' >

민족의 영산 '백두산' 인천에서 출발해 연길에 도착했다. 연길공항에는 한자와 한글로 연길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연길시(延吉市)는 연변(延边)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다. 조선 말기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개척한 지역으로 한국에서는 '동간도'라고 불렸다.이도백하로 가기 전 '용정시(龍井市)'에 들렀다. 용정시는 연변 내 모든 행정구역 중 조선족 비율이 가장 높다. 순수 조선족이 개척한 도시로 용정시에 있는 '용두레 우물'은 용정시 이름의 기원이다. 백두산은 해발 2744m다. 총 16개의 봉우리가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북한의 장군봉이다. 천지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다.중국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북파(北坡), 서파(西坡), 남파(南坡) 3가지 코스가 있다. 파(坡)는 우리말로 ..

전체 2025.06.15

< 처인성 전투 >

처인성 전투 처인성은 천안이나 청주, 충주로 나가는 주 교통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수원에서 평택으로 가거나, 용인에서 안성으로 가는 간선축에서도 벗어나 있다. 단지 용인에서 진위로 가는 부수적인 교통로에 불과하다. 따라서 몽골 침입 당시 난을 피할, 최소한의 방어에만 적합한 성이었다.고려와 달리 이런 이유로 조선은 처인성을 활용하지 않았다. 약 3리의 성벽이 남겨져 있었으나, 성곽으로 기능이 상실되었다는 기록이 다수다. 단지 군대 창고로 활용했다. 옛 지도에서도 처인성의 존재를 찾기 힘들다.몽골의 2차 침입 때도 비슷했으리라. 성안에 모인 백성의 규모는 얼마였을까. 김윤후는 진위에 있던, 사찰이 운영하는 초소의 일종인 '백현원' 소속이었다. 전란이 나자 처인성으로 피난해 왔다가 성에 모여든 백성과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