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고려시대 160

< 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

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김윤후는 1232년(고려 고종 19) 현 용인 백현원(白峴院)의 승려로 있을 때, 몽골대군이 침입해 오자 지금의 처인성(處仁城)으로 피란해 성민들을 지휘했다. 때마침 몽골군이 처인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자 처인성 피란민들을 지휘해 몽골군과 싸웠다. 특히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여 몽골군을 퇴각시켰다. 고종이 살리타이를 사살하고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에게 상장군의 직위를 내리자 김윤후는 공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며 "저는 전쟁을 당해서도 무기를 잡고 일어서지 못했던 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잘 것 없는 공으로 후한 상을 받겠습니까?"하며 사양했다는 일화가 에 나온다. 공을 양보한 승려 김윤후에게 고종이 관직을 낮춰 섭랑장으로 임명하자 그때서야 관직을 받아들이고, ..

< 여몽연합군의 두차례 일본 원정 미스터리 >

여몽연합군의 두차례 일본 원정 미스터리 1266년 몽골은 바다 건너 일본을 초유(招諭)하고자 했다. 몽골 및 고려의 사신이 십여 차례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일본은 거부했다. 사신들은 구류 혹은 피살됐다. 당시 고려에서 삼별초 항쟁이 진행돼 일본은 후순위로 밀렸다. 1273년 4월 여몽연합군은 제주도의 삼별초 진압에 성공했다. 이후 일본 원정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몽골은 둔전경략사(屯田經略使)를 통해 군량 확보에 나섰다. 고려 정부에는 군량 확보와 전함 건조를 요구했다. 1274년 동정도원수부(東征都元帥府) 산하의 몽한군(蒙漢軍) 2만6000명이 주력으로 편성됐다. 고려군 8000명과 선박 운용을 담당하는 초공(梢工)·수수(水手) 6700명이 동원됐다. 고려가 건조한 전함 900척도 준비됐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