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인도의 대결-맥마흔 라인
최근 뉴욕타임스는 '라이벌과 파트너'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해 가을,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누구인가를 묻는 중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40%의 응답자가, 인도가 미국의 뒤를 이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인도의 언론 매체들이 보인 커다란 관심이었다."
2004년 < 이코노미스트 > 는 인도와 중국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골드만삭스는 2042년에 인도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올해로 국교 수립 60주년을 맞은 중국과 인도는 항상 서로 으르렁대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인도양의 앙숙 라이벌 국가이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은 1914년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된 이른바 맥마흔(McMahon) 라인이 영국령인 인도와 티베트 간의 국경선으로 간주되면서 획정되었다. 하지만 이 맥마흔 라인에 합의한 3자(영국, 인도, 티베트)의 대표성 문제가 불거졌고, 1949년 10월 중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중국은 모든 '불평등 조약'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때 맥마흔 라인도 문제 될 수 있었지만, 양측 모두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함으로써 다시 문제가 되었다. 그러다가 1954년 4월, 중국령 티베트와 인도 간에 무역 및 교류 협정이 체결되면서 인도는 사실상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뒤 중국은 자국이 점령하고 있지만 인도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악사이 친(인도의 서북 국경 지역 라다크)에 중국 신장 지역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해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했다. 당시 중국은 인도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내정을 간섭했다고 규정해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1962년 10월, 양국은 마침내 전쟁에 돌입했다. 이 전쟁에 양측은 약 3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는데, 중국군의 두 차례에 걸친 맹공으로 인도군 3천여 명이 전사하고, 약 4천명의 병사가 포로로 잡혔다. 전쟁에서 패배한 인도는 소련에 급속도로 기울었으며, 반면 중국은 인도의 적국인 파키스탄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1989년에 이르러 두 나라는 국경 회담을 추진했는데, 양국 모두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국경을 안정시켜야 했던 상황이었다. 결국, 양측은 1993년 9월에 국경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했고, 1995년 8월에는 양측 국경 병력을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1996년 11월, 장쩌민 국가주석이 최초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양측은 국경 문제 및 신뢰 구축 4개 협정에 서명하면서 기존의 국경선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장기간에 걸친 중국과 인도 간의 국경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양국 간 상호 신뢰의 토대는 매우 취약했다.
미국과의 교류 놓고도 신경전 치열
이에 따라 인도는 '양면 기동 작전' 구상을 내놓고 최근 중국과의 국경선 부근에 공군과 육군을 추가로 배치했다. 특히 2006년 이래 인도는 수천 명의 중국인 비숙련 노동자들을 추방했다.
최근에는 중국측이 양국 간 분쟁 지역에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면서 두 나라는 더욱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또, 중국은 인도의 적대국인 파키스탄과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강화시켜나가는 동시에 2008년 스리랑카에 총 10억 달러가 소요되는 항만 건설 비용 중 85%를 지원하고, 3천7백60만 달러의 무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나아가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부탄, 미얀마, 네팔 등 인도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나섬으로써 일종의 포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도양은 중국이 소비하는 원유의 80%를 수송하는 유조선들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에 대해 인도측은, 인도양에서 중국이 만든 항만 시설들이 유사시 해군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도가 미얀마에서 중국을 필사적으로 따돌리면서 항만 건설 프로젝트를 따내고, 10년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만들기로 한 것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또, 인도양에서 핵무기 적재가 가능한 미사일 실험도 실시했는데, 이 미사일들은 중국 주요 도시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가진 미·중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성명서에는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의 평화·안정·개발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이 공동성명이 향후 중국이 인도 주변의 정세에 간섭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준다며 매우 불편한 심경을 표시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라는 싱 인도 총리의 최근의 언급도 괜한 엄살만은 아니다.
한편, 인도가 2008년에 35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수입하고, 2009년에 미국과 인도가 방위협정과 핵 협력 계획을 공동 발표한 직후부터 중국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지난해 말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에 대한 주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고, 중국 외교부는 인도 총리의 아루나찰프라데시 방문이 '침범'이라고 비난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점하면서 미래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툴 두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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