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민족 '엉킨 실타래' 예루살렘
하나의 땅이지만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로 불리는 곳, 예루살렘.
이런 역사 배경을 가진 예루살렘이 최근 격랑에 다시 빠져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까지 옮기겠다고 선언하며 불쏘시개를 자처해 갈등의 불씨가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건국일이자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강제이주를 당한 치욕의 날인 5월14일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자치령에서 시위가 격화돼 ‘제3의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로 인한 유혈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스러운 순례지로 알려진 예루살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테러가 반복된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얽힌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중심에 있다.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과 무슬림 중심의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유럽에서 억압받던 유대인들 사이에 ‘시온주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민족주의 운동)’가 등장한 19세기 말부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위임통치하던 기간에 유대인들의 대규모 이주가 이어진 것이 팔레스타인 거주 무슬림과의 유혈충돌이 한층 더 거세지는 출발점이 됐다.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과 함께 예루살렘 서쪽을 장악하고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마저 차지하면서 분쟁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졸지에 피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무단 점령했다고 반발했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은 7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고 자치정부를 수립한 팔레스타인, 하지만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미래의 수도’로 여겨져 양쪽의 갈등은 여전하다.
그러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종교적 분쟁을 우려해 1947년 팔레스타인 분리안을 채택할 때 예루살렘만큼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사회 관할지역으로 남겨놓았다. 이후 이스라엘은 꾸준히 예루살렘을 공식 수도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했다. 각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이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역대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일관되게 중립 원칙을 고수한 것도 국익과 외교적 이해관계, 이스라엘과 아랍 간 균형외교, 분쟁 예방을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일촉즉발 상태인 이 지역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폈다.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점유권을 인정하자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다시 격화되며 양쪽 간 무력충돌이 염려될 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사회운동가인 아마드 마부 리타마는 미 종합지 네이션에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우리가 강제로 내쫓긴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도 지속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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